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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438

소년이 온다. 우리가 사람됨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양심을 붙잡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양심에 따라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는 것. 15살의 동호가 보고 싶다. 중학교 3학년의 앳된 청소년. 그 사지에서 마지막까지 시민군과 함께한 후 아프게 떠난 아이.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계엄령에 따라 움직이며 시민들을 살육하는 군인들의 앞에 맨.. 2024. 12. 25.
삶의 꽃을 피우는 방법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마침내 남은 한 잎이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나도 아려 눈을 감네. 이호우 님의 시조 ‘개화(開花)’다. 마지막 꽃잎이 열리는 순간이 눈에 그려진다.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는 한순간, 시인도 아려서 눈을 감는 그 짧은 시간. 예수께서 길을 떠나는데, 한 청년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계명을 알고 있느냐 물으니, 청년은 어려서부터 모두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십계명을 모두 지키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예수께서 청년을 사랑스럽게 여겼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는데,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자 청년.. 2024. 11. 24.
불안은 내 친구 불안을 떨치고 싶어서 불안에 관한 책을 몽땅 사서 읽으려고 덤볐던 적이 있었다. 몇 권 읽다가 책을 모두 한곳에 몰아 넣어 놨다. 당시 더 불안해졌었다.  그중 지금도 기억 나는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대니얼 스미스의 몽키 마인드까지 머리에 빙빙 돌아다니는 내용이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을 겪는 사람들의 자기 일상을 기록하는 책을 볼 때면 불안이 더 커지는 경험을 했다. 이유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 또는 ‘안도감’이나 ‘확신’이 상실된 심리 상태를 우리는 ‘불안’이라고 한다. 불안은 나쁜 것인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든 과잉 상태는 매우 나쁜 일을 맞다. 불안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불안은 ‘설렘’으로도 해석된다. 어떠한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 일을 통한 희망을 .. 2024. 11. 23.
사람을 사랑으로 만들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계속 보고 있으면 ‘사람’이 보인다. ‘사+ㄹㅁ=사람’이다.  ‘살아감’을 계속 보고 있으면 사람 속에 ‘사+ㄹㅇㅏ=사랑’이 보인다.  내 눈이 어찌 됐는지 모른다만 한글 안에는 오묘한 그 무언가가 있다. 삶을 살아 내는 이들은 사람들이다. 그 살아감의 본질은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사람이고, 살아감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삶은 사람들의 관계로 형성되어 가고 그 관계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연인과의 사랑, 이웃의 사랑, 자녀, 부모에 사랑, 국민의 사랑, 팬의 사랑 등 그 모든 사랑이 우리네 살아가는 사람들 간 관계의 본질이다.    우연히 박 소장님 페북에 올라온 프롤로그 제목에 “사랑한다와 살아간다는 동의어다”라는 제목 보다가 생각이 많았다. 집에 오니 예약해 .. 2024. 11. 14.
붙잡고 씨름해야 할 문제 “너는 아침에 일어나면 날마다 즐겁고 좋니? 아니면 힘들고 지치니?”, 힘든데요.”, “그런 삶 속에서 가끔은 행복하고 즐겁지. 그게 우리네 인생 같아.” 가족 모임에서 아이와 나눈 대화 중.  삶은 힘들고 지치는 과정이 맞다. 가끔 평안함과 행복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문제없는 삶에 대한 욕구나 갈망’은 버려야 옳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없고 힘들지 않은 삶을 추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 인생의 질문을 ‘문제없는 삶’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답이 없는 질문이어서다. 삶의 질문은 ‘내가 붙잡고 지니고 있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설정해야 한다. 최소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서 집중하며 씨름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고 집중하는 일이다. 가족 모임 중에 .. 2024. 10. 30.
아파서 추천하는 책... 문익환 평전> 개정판까지 두 번째 읽었다. 수년 전에 읽었던 가슴 뛰던 순간과 다르게 두 번째 읽을 때는 현실과 견주어 반복되는 역사를 살피다가 아팠다. 강남순 교수님의 철학자 예수> 읽고, 질문빈곤사회> 읽다가 현재의 우리 사회에 ‘혐오’와 ‘배타’, ‘분절’되는 현상의 근원에 대해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다. 특히 나와 같은 개신교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혐오’를 넘어 ‘혐오’에 기생하는 상태까지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윤리적이고 비성경적이며, 비과학적인 지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의 무지함이 적나라해서 아팠다.  구매해 놓고 쌓아만 두었던 소설 중 한 권을 꺼내서 읽었다. 김혜진 작가의 번의 일>이다. 기업에서 퇴직 대상인 중년의 가장이 자기 일을 어떻게 지키며 버티는지 .. 2024. 10. 23.
인생은 시간에 의해 가 보지 못한 곳으로 끌려 가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지나가 버리는 ‘길’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게 모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높은 곳에서 석양 보면 좋다. 하늘이 좋아서 사진 찍었는데 그 아래 많은 건물 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점 하나와 같이 작은 건물에 3층 세 들어 사는 ‘연구소와 달그락’만 보인다. 내 삶이 묻어 있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교회 십자가도 커 보인다. 19살 처음 뽀뽀할 때 많은 소설책 읽으며 머리로만 상상하던 달콤한 키스는 없었다. 하늘 별빛만 보였고 갑작스러웠다. 첫사랑의 두근거림이 무언지 모른 채 청소년기가 지나가 버렸고, 청년기 열정만 넘치던 때 아무것도 모른 채 장년의 세계에 들어와서 아빠가 되어 버렸다.  인생은 시간에 의해 가 보지 못한 곳으로 끌려 가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지.. 2024. 9. 18.
문익환 평전 문익환 평전. 2004년 초판 읽고 그때 가슴이 얼마나 울렁였는지 모른다. 14년이 지나고 2018년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이 나왔는지도 몰랐고 몇 달 전에 구입해서 책꽂이에 모셔놨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펼쳤다.  20년 전 그때 무엇이 그리 치열했는지 모른다. 활동에 지치고 사람에 치여서 하늘 보며 한탄할 때 많았다. 그 당시 평전(초판) 읽고 마지막 이 한 문장을 만났었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문익환 목사님.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일본신학교에 유학한다. 만주의 창춘에서 목회하다가 1946년에 월남하여 서른 살의 나이로 한국신학대학(현재 한신대)을 졸업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 1949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했다가 6.25 전쟁 발.. 2024.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