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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코모레비를 느낄 수 있는 한해이기를

by 달그락달그락 2025. 1. 2.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매일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볼 수 있다. 햇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삶의 충만한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도쿄의 화장실 청소일을 하는 히라야마’. 새벽에 일어나 양치하고 콧수염을 다듬고 세면을 한 후 집 앞에서 자판기 캔 커피를 뽑아서 작은 승합차를 타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도쿄의 공공 화장실로 향한다. 차 안에 카세트테이프로 오래전 팝송을 듣는다. 꼼꼼하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점심은 공원 한 곳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오후 청소까지 마치면 귀가 후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을 향한다. 탕에서 몸을 풀고 나와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헌책방에 산 책을 읽고 하루를 마감하고 잠을 잔다. 나무 사이로 비춘 햇살이 보이는 꿈을 꾼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양치하고 세면을 한 후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나 충만해 보여 놀랐다. ‘퍼펙트 데이’ ‘빔 벤더스라는 독일 감독이 만들었고 야쿠쇼 코지가 주연한 영화다.

 

늦잠을 잤다. 전날 송구영신 예배 다녀오고 새벽까지 아이들하고 깨어있었다. 점심 먹고 잠시 잠에 들었다. 낮잠을 잔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정말 오랜만에 대낮에 침대에서 한 시간 넘게 누워 있었다. 마감 있는 칼럼 쓰다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침대 누워 티브이 켜서 본 게 퍼펙트 데이즈.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넷플릭스 연달아 클릭했는데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라는 다큐가 뜬다. 작년인가? 이 사람 늙지 않고 젊어지기 위해서 아들의 혈청을 이식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다큐 주인공인 브라이언의 인생 목적은 늙지 않는 일이다.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온전히 자기 몸을 위해서 반복되는 일을 한다. 운동하고 기계에 몸을 넣고 매끼당 50알이 넘는 영양제를 먹고, 채식 중심의 똑같은 식사를 매일 한다. 유전자 치료를 받는 등 늙지 않기 위한 모든 일을 한다. 하루를 온전히 자기 몸을 위해 집중하는 부자다.

 

새해 첫날이다. 저녁에 타이레놀 하나 까먹고 멍하다가 지금 시간이 되었다. 혼자 살면서 화장실 청소만으로도 삶이 충만할 수 있다. 자기 모든 것을 몸 관리하는데 집중하며 미디어에 계속해서 드러내며 죽지 말자캠페인 하며 펜을 만들고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모두가 자기 삶에 어떤 지점을 향해서 살아간다.

 

새해가 되면 언제나 비장했다. 지난해 돌아보고 새해 기획한 내 안의 일들 정리하는 시간이 길었다.

 

영화 보다가 이틀간의 내 모습이 괜히 웃겨 보였다. 언론을 보는 것도 지친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적기도 하고 스트레스만 커 간다. 나이 들어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일이다. 내 존재로서, 우리라는 사회적 존재로서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매번 엄청난 일을 행해서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에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로 갈리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늘 보는 그 순간을 계속해서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어로 코모레비(komorebi)’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한다. 그 햇살을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완벽한 하루는 그 순간에 존재하는 햇살을 느끼는 일이다.

 

새해다. 햇살을 볼 수 있는 한해였으면 좋겠다. 흔들리는 나무에 비추는 햇살을 그 순간에 느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