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인의 이야기. 남자는 여자에게 “나는 당신의 따뜻한 미소와 귀여움, 나의 많은 것을 수용해 주고, 나를 믿어 주며 잠자리도 좋아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요?”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이유라고? 모르겠어요. 그냥.”
남자의 말을 해석하면 여자가 따뜻한 미소를 보이지 않고 귀여운 애교도 없으며, 수용도 안 하고 자주 비판하거나 잠자리를 거부하면 남자는 여자를 싫어하게 될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 이유(근거)가 사라지거나 작아지면 사랑은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다. 역사와 영화, 소설을 읽고 보더라도 사랑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대신 죽기까지 한다. 이성 간의 사랑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어떤가. 부모는 자녀가 어떤 일을 잘해서 사랑하나? 그렇지 않다. 그냥 존재 자체로 사랑한다. 그 사랑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가슴에 어떤 본성인 것 같다. 이 본성을 우리(사회)는 다시 사고하면서 이상하게 해석하고 이유를 만들어 낸다. 본성 이후에 사고가 커지면 불안이 오면서 자녀를 (입시)지옥에 넣어 버리는 이상한 모습도 만들어 낸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본성인데 이 생각을 사회로 전이시켜 ‘무언가 잘 되게 해야 한다’는 사고(thinking)를 하게 되는 순간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사랑(본성)이 입시전쟁(사고)이 되는 거다.
사고를 멈춰야 하는 이유다. 그냥 본성 그대로의 생각(thought)을 사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내면에 떠 오르는 내밀한 본성에서 오는 소리를 듣는 과정이 종교인이나 정신의학자들이 말하는 기도와 명상 같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에서 오는 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처럼 논리적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그런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생각(비판적 사고라고 우기는 이상한 사고)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본래 떠오르는 생각을 난도질(사고)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선택의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는 사고를 멈춰야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일도 마찬가지. 누구에게 물어보고 상의한다고 내가 통찰하여 결정한 일들이 바뀌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내밀한 본성에 의해서 붙잡은 이상을 실현하는데 누구에게 자문을 얻어 얼만큼의 보탬이 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물론 토론하고 자문 얻고 자료를 분석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자료와 해석, 제안이 모두 맞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은 사고하면서 선택하게 되는데 이 때의 이 사고를 믿지 말고 본래의 본성인 ‘직관’ 또는 ‘통찰’을 믿는게 좋다는 말이다. 물론 직관도 오랜 시간 경험과 공부, 기도와 명상 등 영적 노력이 바탕이 된다(어떤 이는 무조건 그 본성을 믿으라고 한다).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 보자. 그 자체로 인간 내면에 가장 깊은 본성이 있다. 사랑만 있는 게 아니다. 평화, 영성, 신성 등 인간 바탕의 어떤 본질과도 같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창조성도 그렇고.
본질적인 가치들도 모두 그렇게 가슴 바닥에 나도 모르는 생각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을 사고하면서 선택하게 되거나, 외적인 느낌에 너무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려는 사고를 멈추고 몰입하면서 그 바탕의 생각(본성)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비판적 사고로 만들어 내는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선택하는 과정보다는 그 이전에 바탕이 되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랑은 그냥이라는 말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데로의 그냥.
바탕의 생각을 어떠한 이유나 근거나 아닌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아 내는 것.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가장 소중한 중심의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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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조세프 웅우옌이 쓴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는 짧은 책 읽다가 별생각 중. 생각(?) 나는데로 끄적인 글. 결국 사고를 멈추고 본성을 따르며 무념의 상태인 몰입하라는 것. 여기에서 “Non Thinking = flow”라고 여긴다. 고교생 때 사는 게 뭔가 많이도 고민했었고 결론을 내렸었다. '죽기 위해서 산다'는 개똥철학 설파하면서 어쭙잖은 세상 고민 다 하고 살던 때가 있었다. 이 책 보다가 그때 내가 생각이 나. 책 보다가 그 때 내 모습 생각하다가 그냥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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