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고슴도치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서로 피 흘리지 않고 잘 살아간다는 이들이 많다. 맞는 말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무조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서로 피곤하지 않고 피 흘리지 않으며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것을 믿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사랑에는 거리가 없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 사랑하는 이와는 가시가 없는 가장 부드러운 살 그대로를 내민다. 고슴도치도 사랑하는 이에게는 거리를 두지 않는다. 고슴도치 암컷은 새끼에게 젖을 주기 위해 옆으로 누워 가시가 없는 자신의 배를 내밀어 준다. 이때 무슨 적당한 거리가 있나?
적당한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고, 사랑하는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가 있다. 자녀나 연인을 사랑하는 공간에는 가시도 없고 거리도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사랑은 부드러운 살을 내미는 정도가 아닌 자기 목숨도 던진다. 어떤 이들은 목숨 던지는 인간관계는 영화나 책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오버’하지 말라고 한다. 타자는 고려하지 말고 적당한 관계 맺으며 자기만의 삶의 방식대로 더 이기적으로 살아 보라고 권면하는 이들도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기성이 크다는 것은 타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인데 그럴수록 사람은 더욱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조금은 상처가 있어도 부딪치고 관계하면서 차이를 알아 가는 게 우리네 인간관계여야 하지 않을까? 지구 안에 같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고 같을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 그 차이를 알아 가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우화 속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딜레마를 설명했다. 추운 날씨에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하고 싶어하지만 서로의 가시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체온을 나누었다는 쇼펜하우어의 우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고슴도치 딜레마. 그는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상처는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딜레마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감내해야 하는 상처만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감내해야 하는 상처의 마지막은 가장 안정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타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가시 때문에 피 흘리기도 하고 아파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더 깊어지면 가시가 없는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보일 수 있는 안전한 관계가 된다. 약한 부분뿐만 아니라 엄마 고슴도치처럼 자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관계까지 가능해진다. 나는 이런 관계가 더 많아져야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 관계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 사이가 가시를 스치지도 않을 정도의 먼 거리라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나에게 가시가 없는 가장 약한 부분을 내보이고, 상대 또한 그런 곳을 보이고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관계의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가위가 지났다. 가족과 친구들 만나면서 가시와 가시 없는 가장 부끄럽고 연약한 곳 중 어디를 더 내밀고 있는지 생각이 많았다. 내 모습도 살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긴 연휴가 끝나고 매일 만나는 기관의 선후배, 이웃, 후원자, 위원, 자원활동가, 이사, 봉사자 등 사람들을 또 만나고 있다. 그 관계가 신뢰 넘치는 복이 되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하늘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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