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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더 플랫폼'에 나타난 '새만금잼버리'라는 현실

by 달그락달그락 2023. 8. 10.

몇 년 만인가? 이틀을 쉬었다. 아이들과 9시마다 극장을 찾아 조조할인 영화를 감상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비공식작전, 밀수 등 을 봤다. 점심 먹고 조용한 카페 찾아서 책도 읽었다. 늦은 오후에는 근거리에 있는 휴향림을 찾아 짧은 산책도 했다. 쉼이 별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편안한 일 하는 거지. 밤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몇 편도 찾아봤다. 그 중 더 플랫폼은 강렬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보면서 더 플랫폼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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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콘크리트 유토피아  다음영화 사이트에서 캡쳐

 

아파트는 주민의 것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에서 단 한 곳,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들어오는 데 위협을 느꼈는지 그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영탁(이병헌 분)’을 대표로 뽑은 후 외부인을 내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과연 이곳은 유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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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더 플랫폼  다음영화 사이트에서 캡쳐 

 

<더 플랫폼>은 감옥에 두 명씩 수감(?)되어 있는 300여 층이 넘는 수직 감옥(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최상위 0층에서 최고의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어 1층부터 내려보내면 먹고, 나머지 음식이 2층으로 내려가는 형국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음식은 없어지고 더러워질 것이고 인간성도 사라져 간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더 이상 먹을 게 없으면 살기 위해서 파트너를 죽이고 인육까지 먹는 잔인함까지 나온다. 계속 선택된 층에서 사는 게 아니다. 30일마다 무작위로 층수가 바뀌는 극한 생존의 수직 감옥이다.

 

출처. 콘크리트 유토피아  다음영화 사이트에서 캡쳐

 

두 영화에 극한 공간(사회)에서도 깊은 연대를 위해서 아파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목숨을 걸고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을 만큼만 나누어 접시에 담아 내려보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조금만 줄이고 나누면 300여 층 모두가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연대를 강조하는 사람, 그리고 외부에 사람들을 살리고자 목숨을 걸고 자기 방에 숨기는 사람들까지.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된다. 중학생인 막내가 비공식작전까지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 보면서는 무섭다는 표현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병폐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지만, 중학 1학년 아이가 이해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에서 자본주의 폐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면 새만금 잼버리가 튀어나왔다. 극단을 달리는 양당 정치인 들이 신기하게도 새만금만 만나면 손을 잡고 개발에 열을 올린다. 잼버리가 폭망한 문제의 시발점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새만금을 활용한 잼버리를 잘 치르고 싶었다면 이미 매립되어 안정화된 땅을 활용해서 나무도 심고, 재정도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더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해창갯벌 267만 평이 사라졌다. 20202월부터 지난해 겨울까지 매립된 곳이다. 잼버리를 근거로 예타까지 면제받은 새만금 국제공항은 2029년까지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모든 개발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모두가 안다. 토건 세력이다. 공항을 지어 적자가 나도, 도로 다리 건설을 하고 차가 몇 대 다니지 않아도 관계없다. 끊임없이 땅을 메꾸고 돈을 끌어 오면서 사업을 늘려야 수익은 증대한다. 그 돈은 세금이다. 정치인 또한 시민들의 눈을 홀려 새만금에 모든 경제적인 수익이 날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홍보에 열을 올린다.

 

실제 잼버리는 새만금 신공항과 고속도로, 신항만 등 인프라를 추가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됐다.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전북으로 향하는 고속 네트워크가 필요하다”(전북연구원)는 이유였다... <중략> 토건자본은 주머니를 불렸고, 자치단체장과 정치인들은 이를 치적으로 홍보했다. 가장 치명적인 잘못은 잼버리 야영장 터를 마련한다며 해수 유통으로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던 해창갯벌 267만평을 메워버린 것이었다(편법의 연속이었다).”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황궁아파트에 살아남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들이다. 타자가 죽거나 어떻게 돼도 관계가 없다. 더 플랫폼의 상위층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이들 또한 아래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먹고살든 관계가 없다. 자신만 배부르게 먹은 후 그 음식에 배설하고 토악질해도 관계없다. 나만 잘 먹고 살면 그만이다.

 

연대 의식은 있을 수 없다. 새만금에 환경문제, 지역민의 가난을 호도하면서 이용하는 정치 문제, 새로운 대안 없이 무조건적인 경제적 수익을 통한 토건 세력의 배불리기 등 그 어디에도 잼버리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활동과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토건 세력과 몇몇 정치인들의 이용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 토건 세력과 이득을 챙기는 정치인들이나 그 누구도 그들의 기득권과 이익에 반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을 좋아할 리 없다. 그 모든 일은 수도권 발전에 따른 지방의 피해의식을 끝 간데없이 이용한다. 새만금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전북 도민 상당수는 새만금 개발을 찬성한다. 왜 찬성하느냐 물으면 지방의 경제적 낙후를 메워줄 한 줄기 빛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허구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개발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되묻는 이들이 많다. 아니다. 나는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적 발전을 통해서 지역민들이 나름의 이득을 얻고 조금이라도 삶이 살기 좋아졌다면 이런 식의 비판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탄생한 새만금 사업. 쌀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농지를 확보하고 늘려야 한다는 코미디 같은 목적을 내걸고 우여곡절 끝에 199111월 첫 삽을 뜬 후 전북의 경제는 엄청나게 발전했나? 도대체 새만금을 통해서 도민의 삶이 나아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에 답이 있었다. 황궁 아파트에서도 자기 목숨을 걸고 외부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있고, 더 플랫폼에서도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모두가 살 수 있다며 깊은 연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약자들과의 연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때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어 간다고 믿는다. 극소수 일부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시민이 착취당하면서도 그 착취의 근본이 어디인지, 왜 세금을 거기에 쏟아부어야 하는지 모른 채 끊임없이 다수가 착취당하면서도 이상한 경제 성장에 현혹되며 안 된다고 여긴다. 잼버리를 진행하면서 그 행사의 주인공인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고통당하며 철수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아파트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내가 살고 있는 플랫폼(감옥)의 층수가 항상 상위권에 있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매달 바뀌어 가는 플랫폼의 층수. 우리가 모두 기억해야 할 연대의 가장 기본은 너도나도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연대의 시작은 그 누구도 플랫폼의 아래층과 황궁 아파트의 밖에서 살 수 있고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새만금 개발과 이번에 열리고 있는 잼버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적 병폐가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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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촬영한 태퐁 바로 전 하늘

 

태풍 오기 전 저녁 막내가 아빠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무지개도 있네하면서 하늘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 준 사진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름 뒤에 태풍이 왔고 오늘 오후 지나가면서 비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조용한 구름과 햇빛이 비친다. 자본주의가 어찌 됐건 우리는 또 그렇게(?) 하늘을 보고 감동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갈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 유지하는 삶도 우리 아이들과 그 후대에도 계속해서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다 보면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하늘은 너무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