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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듣는다는 것?

by 달그락달그락 2023. 8. 1.

 

듣는다는 것은 상대가 말을 해야 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수동적인 일일 수 있다. 듣는 일이 과연 수동적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말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 없이는 들음도 일어나기 어렵다.

 

최근에 일이 떠올라. 어떤 기관(?)에 중요한 일에 어떻게 추대되었고 그 일에 열심을 냈다. 최종 중요사안을 결정하는 자리. 10여 명 모인 회의 자리에서 진행자께서 의견 말해 보라고 해서 전남 등 모 지역까지 찾아가서 현장 살피고 서류검토까지 하면서 최선을 다한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런데 진행자 한 분만 자기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하고 한 두분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 결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당황했다. 그리고 바로 투표했으나 % 넘기지 못해 결정하지 못하고 또다시 회의 날짜만 잡았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대와의 관계가 틀어질 때 그 진심으로 인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위험 또한 감수해야 한다.

 

어떤 변호사가 그랬다. 많은 분쟁을 경험했는데 그중 가까운 이들과의 분쟁이 많았고 대부분 초기 너무 가까운 사이에서 나누었던 속 이야기가 분쟁 중 서로의 가장 큰 무기가 된다고 했다. 이 말 들으면서 아팠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가슴 속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신뢰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듣는다는 것은 또 다른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을 존중하고 신뢰하니 당신이 나에게 하는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며 잘 간직해 드릴게요라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 우리네 인간관계를 깊고 넓게 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우정도 사랑도 더 깊어진다.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배설하듯이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에 자신의 가슴 내밀한 말은 얼만큼이나 할까? 듣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어느 수준까지 듣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저 일상적인 겉치레의 이야기를 듣는 수준에서 마치는 것은 아닌가?

 

듣는다는 것도, 말을 한다는 것도 어느 수준에 따라서는 엄청난 힘을 내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그런 일상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사회, 그런 공동체를 꿈꿔. 내 가까운 이들에게 전한 나의 내밀한 이야기들 생각하면 가슴 따뜻해지다가도 가끔은 이불킥하기도 하고. 듣고 말하는 삶이... 그런거지 뭐.

 

박총 원장님의 글을 조금씩 읽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빵이나 쿠키를 큰마음 먹고 사서 아이들 나누어 주고 조금 남겨서 한 번에 먹지 못하고 조금씩 아껴 먹는 것처럼 책을 읽()고 있다. <듣기의 말들> 읽다가 생각이 많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