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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삶의 물어 독도법

by 달그락달그락 2022. 10. 23.

군대에서 독도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천리행군 중 소대별 타격지점 설정한 후 이동했다.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타격지점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맸다. 길을 찾는 도구는 나침반과 지도 한장이 전부였다. 지도가 정확하지 않은지 아니면 내가 잘 못 알고 가고 있는지 소대원들과 있는 곳이 어딘지 구분이 안됐다.

 

10명 안되는 작은 인원 이끌면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만난 산속에서의 주민 두 분. 가고자 하는 곳 물었더니 바로 안내해 주셨다. 그때 깨달았다. 독도법은 물어 독도법이 최고라는 것. 지금도 강원도 산골(오지?)에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혼자 또는 한두 명씩 사는 분들이 계실 거다.

 

군대뿐인가? 삶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나침반과 지도를 열심히 찾았지만, 무용지물일 때도 있다. 종교를 갖게 되었고 어쭙잖은 인문학 공부도 하게 됐다.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삶을 위해 잘 그려진 지도라고 생각했다.

 

이 땅 떠날 때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이룰만한 능력도 별로 없다) 무엇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잘 살았다는 말을 들어야겠다.

 

최근 활동하면서 머리 아픈 일이 있었다. 지금 머리를 지끈거리며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너무 피곤했다. 몇 년 전 가슴 안에 뭉텅해 내려 버린 스트레스가 다시 올라오는 느낌이다.

 

 

오후 예배까지 마치고 신성리 갈대밭에 갔다. 귀가 후 노트북 켜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와서 하늘 봤다. 흔들리는 갈대밭에 바람도 좋았고 내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는 막내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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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한쪽은 갈대밭으로 덮여 있지만 바로 옆은 벼가 익어가고 있는 신성리. 가운데 걷다가 신기했다. 갈대밭 좋아서 왔으면서 머리에는 벼를 내리지 않고 갈대밭을 왜 그대로 두었을까? 라는 모자란 생각이라니.

 

집중해야 할 그 순간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겠다. 멀리 생각하는 습성 때문에 방향에 대한 고려도 크게 하고 있으나 자꾸만 힘겨운 일과 불안도 함께 밀려온다. 끊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행하는 일에 몰입하는 게 맞다.

 

지도나 나침반만 중요한 게 아니다. 물어 독도법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함께해야 길을 가되 외롭지 않고 조금은 덜 불안하게 갈 수 있다. 그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그 목소리가 물어 독도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내 옆에서 쉬지 않고 쫑알대는 막내딸의 이야기가 가장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