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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가장 소중한 일

by 달그락달그락 2022. 11. 16.

7시에 번쩍 눈이 떠졌다. 아이들 밥 먹여야 한다. 어제 마트 가서 산 식품 중 일단 식빵을 꺼냈다. 프라이팬에 적당히 구우려고 했는데 큰 애가 나와 보더니 버터 넣으라고 했다. 언능 냉장고 열어서 버터 찾아서 포장지 벗겨 수저로 떠서 프라이팬에 넣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코옥 찌른다. 바로 식빵 투척. 나와 닮은 네모난 녀석이 노릿한 색을 넘어 조금 까매지려고 한다. 얼른 꺼내고 달걀 후라이 세 개 했고 바나나 식탁에 올리고 우유를 컵에 따랐다. 사과잼하고 이름도 생소한 누텔라를 꺼내 놓으니 그래도 식탁에 뭔가 있어 보였다.

 

아침은 해결했고 설거지 후다닥 해치웠다. 아이들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고 사무실로 바로 나왔다. 커피를 내리지 못해서 근처 프랜차이즈 커피를 받아 온 것 빼고는 아침은 좋았다.

 

어젯 밤 마트 앞 주차장. 장 보고 나오다가 하늘을 마주쳤는데 이럼^^

 

하루가 또 정신이 오락가락하다가 휙 지나갔다. 길청에 있다가 연구소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7시 넘어서 큰아이가 밥한다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 왔다. 어제 사 놓은 마라탕 밀키트도 자신이 요리하겠다면서 신나 한다. 집안일 잘 거들지 않았던 중학생 아이. 마라탕이 저렇게 좋은지.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밥은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꼬들밥이 되어 있었고 마라탕은 마라찜(?)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맛있게도 먹는 두 아이 보니 기분이 좋았다. 설거지를 해치우고(설거지는 하는 게 아니다. 해치워야 한다) 방 청소하고 쓰레기 있는 거 조금 정리하니 10시다.

 

그 분(?)께서 제주로 무슨 워크숍인가를 간다고 떠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내일 아침 먹을 것을 생각하다가 식빵 개수를 세어 보았다. 넉 장 남았다. 3명은 얼추 먹을 수 있다고 여기며 안심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책상에서 보던 책 꺼내서 뭔가를 열심히도 하고 있고, 나는 내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던 거 하는 중이다. 우리 집 거실은 책상하고 책장이 둘러져 있는 곳. 조용한 거실에 켜 놓은 피아노 연주 음악이 편안함을 주는 그런 시간.

 

하던 일 하려고 책상 옆에 올려놨지만 열지를 않고 있다. 손이 안 가. 그래도 뭐, 언젠가는 또 할 거라는 것을 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 량은 비슷한데 마음속의 속도는 많이 달라졌다. 지나 보니 알았다. 세상은 내 마음이 얼마나 요동치고 급하게 하면서 강박을 가지고 밀어붙인다고 해서 그만큼 가지 않았다. 움직임과 변화는 순리대로 되어 갔다. 물론 그만큼의 열정이 또 다른 순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만 요즘은 할 수 있는 만큼을 알고 그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은 지혜이고 용기라는 것을 알았다.

 

우선순위에서 아이들 밥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잘 모르겠다.

 

행하는 청소년활동 안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꼭 남았으면 하는 그것이 있다. 나는 사람이다. 요즘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 함께 성찰하며 기분 좋게 무언가를 서로 나누는 일이다. 죽기 전까지 이상으로 바라는 세상이 되지 않을지라도 꿈꾸는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가는 그 활동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다.

 

설거지 해치우고 청소하다가 별생각 다하는 밤. 하루가 그렇게 또 가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