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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추석에 먹는 라면이라니.

by 달그락달그락 2022. 9. 10.

 

갑자기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가서 비빔면을 샀다. 면에 넣어 먹으려고 골뱅이도 샀다. 비빔면 천원 정도인데 골뱅이가 6천 원, 골뱅이에 비빔면 넣어 먹는 형국이다. 추석에 무슨 궁상이냐고? 저녁을 너무 일찍 먹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명절에 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됐는데 가족 전체가 너무 편해졌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무슨 객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제사를 기독교식으로 모두 바꾸었다. 당시 나는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허접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고모님 여섯 분이 계셨고 아버지는 외아들이었으며 나는 큰아들이다. 집안 장손이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에 박히게 듣고 살았다. 명절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드려야 할 제사도 많았다.

 

제사나 명절 때면 어머니는 죽어라 일하셨다. 내 어린 눈으로 정말 죽어라라는 표현이 맞아 보였다. 떡과 고기, 전 등 그 모든 음식을 거의 혼자 하셨다. 고모님 여섯 분 계셨지만, 그 누구도 제사음식 만드는 일에 손을 거들지 않았다. 이분들도 시댁 가면 일을 할 터인데 우리 집만 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완전 가부장적인 분이셨고, 명절이나 제사 때 술만 드셨으며 어머니를 거드는 일은 없었다. 그런 집안에 제삿날에 갑자기 추도예배를 드리자고 한 것. 외가는 모두 기독교인이었으나 친가는 불교, 유교, 무교 등 다양했다. 제사는 전통이었으니 자연스러웠으나 갑자기 어린놈이 장손이라며 기독교식으로 예배드리자고 하니 모두 당황한 듯 보였다.

 

제삿날 예배를 드려도 어머니는 음식을 계속했다. 웃기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제사상을 차리고 할아버지, 할머님 사진을 올리고 그 옆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렇게 몇 해를 하다가 차츰 음식을 줄여 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 순간 우리 집안에 명절은 각자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었다.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만 들은 풍월(?)로 현재의 제사상 차리는 문화는 우리 것이 아니었단다. 일제강점기 직전 우리 국민의 양반이 80%가 넘었다. 조선 초기 20%가 안 되던 양반이었는데 대부분 돈 주고 족보 사서 양반 된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 국민 대부분이 양반이 된 거다. 양반 아니었던 분들이 허영심과 무언가 있어 보이려는 모습에서 제사상이 갑자기 넘치기 시작한 것.

 

유교식 전통에서 제사상에는 튀긴 음식도 안 올라간다. 매우 간소한 음식만 올렸으며, 그 음식들 또한 여자는 부정 탄다고 남자들이 만들어서 올렸다. 유교는 검소함을 미덕으로 하고 있고 남성우월주의 상상 초월한다. 그런데 돈 주고 산 새로운 양반들이 원래 양반보다 있어 보이기 위해서 겉치레를 시작했는데 그런 일들이 현재의 푸짐한 제사상 문화를 만들었다. 홍동백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문화가 그대로 섞여 버린 것이었고, 전 부치는 것은 절간 문화다.

 

뭐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명절이면 스트레스받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부부간에 싸움도 있고 가족 간에 관계도 안 좋아진다. 이전에 우리 집안을 떠 올렸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만들고 뒤치다꺼리하는 사람 따로 있다. 가끔 큰 소리도 났으며 그렇게 또 싸우다가 웃다가 취하다가 지나가는 명절.

 

요즘은 어떤가? 아직도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음식을 넘치도록 하고 술 마시고 제사 지내며 어색한 만남을 이어간다.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 화목한 분위기가 나는 곳도 있지만, 내 보기에 여전히 불편한 일은 많아 보인다. 쓰다 보니 이런 글이.. 비빔면 소화 되는 소리. 오늘 일은 여기서 그만.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