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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현실에서 살아 내는 영적인 삶

by 달그락달그락 2021. 8. 30.

이 땅에 썩어 없어질 양식 얻으려고 일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땅에 미련 두지 말고 하늘의 영적인 생활이 답이라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이분을 믿고 이 분을 위해서 산다는 어떤(?) 이들은 적인 것보다는 이 땅에서의 호의호식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교회 생활 잘 하면 부자 되고 승진하고 합격한다고 설교한다.

교회 생활 잘 한다는 것은?

 

헌금 많이 내고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 와서 앉혀 놓고 교회 건물 안의 여러 일들에 봉사하는 일이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자기 집을 더 크게 짓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천당에서도 등급이 있어서 이렇게 열심히 하면 자기 집을 크게 짓고 호의호식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자칭 영적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와는 차이가 있다. 판검사도 그 무엇도 이 땅에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 한다. 이 땅의 욕심을 버린다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고 너처럼 헌신하는 사람 모으는 일에 집중하고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부산물이이 온전히 성전을 위해서 노력하자고 한다. 이 또한 천국 가서 잘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 후자 다른 관점 같은데 같다. 100% 똑 같은 사이비들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하신 말씀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었다.

 

 

가버나움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레바논의 실제 난민들을 캐스팅해서 제작된 영화다. 주인공인 어린이 자인은 가짜 처방전으로 구한 마약성 진통제를 빻고 갈아서 물에 탄 주스를 길거리에 나가 팔면서 겨우 연명한다.

 

 

교육은커녕 기본적인 의식주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한 가정에서 학대를 받고, 그저 가짜 처방전으로 약을 받아오는 셔틀 취급을 받으며 살다가 아끼는 여동생 사하르가 강제 조혼으로 건물주인 아사드의 아내로 팔려나가자 분개하며 가출을 하게 된다. 집에 돌아오니 여동생 사하르가 죽음에 이르자 아사드를 칼로 찌르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고발한다.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왜 제목이 '가버나움'이었을까? 예수께서 영생에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고 말한 그 곳이 가버나움이다.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고 수많은 이들을 먹이고 이들 상당수가 예수님을 따라 갔다. 그런데 가버나움에서 이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오병이어 기적 보고 자신도 저 사람만 잘 따라가면 부자도 되고 배고 고프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모양인데 갑자기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니 무슨 개풀 뜯는 소리인가 했을 거다. 결국 대부분이 떠났다.

 

남은 제자 12. 그 중에 한명은 예수를 팔고 자살 하고, 나머지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다.

 

위정자들에게 잘 못된 문제를 그대로 이야기 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제기 하였으며 그 당시 가장 낮은 위치의 창녀, 세리, 어린이, 청소년, 과부 등 당시에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이들과는 가족과 같이 먹고 마시고 살았다. 그들을 삶으로서 가장 크게 위로해 주셨다. 사람들과 삶을 나누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료하면서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는 세상에 가장 낮은 바닥에서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살았던 예수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범으로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데 그 제자라는 이들까지 모두가 도망을 갔다.

 

오늘 목사님께서 예수님은 인격적인 관계를 하신다고 했다. 인격적 관계. 우리를 가스라이팅 하듯이 조정하는 이들이 있는데 예수님과 관계없는 자들이다. 가버나움이라는 곳은 가장 힘겹고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큰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가버나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 자인은 더는 나같이 학대당하는 아이가 없게 함과 동시에 부모가 아이를 못 낳게 해 달라고 한다. 곧 태어날 저 아이도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거라면서. 그 후 승소한 후에 주민등록증으로 쓸 사진을 최후반부에 찍는다. 이때 자인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웃음은 또 다른 희망으로 기억된다.

 

자인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그 곳 가버나움에 또 다른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이 땅에서 삶을 살아 내면서 자인과 같은 어린이와 청소년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삶을 살아 내야 한다.

 

영적인 생활은 현재 내가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신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삶을 살아 내는 과정이다. 생활의 안정을 넘어서서 이 땅에 나 자신이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교회에서 말씀 들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돌아다니는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부끄러움과 쪽팔림의 과정인 모양이다.

 

#가버나움 #영적생활 #지금삶을살아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