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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예수께 욕먹는 방법

by 달그락달그락 2021. 9. 12.

신념의 문제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자기 신념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신념이 모든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내가 가진 신념이 완전히 옳은지, 옳지 않은지 그 경계 어디쯤에서 계속해서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돌아 봐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진다.

 

사각지대 청소년들을 돕겠다면서 청소년에게 자를 붙여 가면서 호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다만 청소년만 이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을 하기 위한 보완재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본질은 청소년을 돕는 게 아니다. 청소년을 자신과 투사해서 자신을 돕고 싶은 것이다. 착각이라는 말이다.

 

청소년도 사람이고 주변의 모든 이들도 사람이다.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청소년만 이다. 장애인만 이고 공장 노동자만 이다. 자신과 약자를 동일시하면서 타자를 배격하고 사회변화를 이루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끔 만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의 오랜 전 모습과 유사해서일거다.

 

잠시였지만 일요일에 아파도 병원도 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주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다녔던 교회에서 그리 배웠고 그렇게 살면 믿음이 좋은 줄 알았다. 일요일에 일은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가끔이라도 주일에 다니는 직장을 다니면 믿음 없는 사람 취급당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배가 고팠는지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 사람들(예수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하고 묻는다. , 안식일에 일을 하냐는 것이다.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에 충실했고 교리도 잘 아는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성직자였다.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몇 발자국 걷는 것도 숫자로 세서 지킬 정도로 율법에 충실한 자들이다. 그 시대에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성직자요, 지식인이었던 것.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 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하는 마음이었겠다. 신이 중심이어야 하고 이를 따르기 위한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고 믿는 자들이었는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다고 하다니.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예배와 재판, 율법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모임 장소다. 지금 교회와는 차이가 있지만 당시에는 교회와 같은 곳이라고 여겨도 되겠다.

 

회당에 들어 가셔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을 하면 안 되었고 사람의 병을 치료해도 안 되는 시대에 그것도 가장 중심이라고 여기는 회당 안에서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 것이다.

 

이자들의 속내를 알고 있는 예수께서 또 한 말씀 하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예수께서 질문 하셨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마음이 굳어진 것을 보고 를 내셨다. 어떤 성경에는 탄식이라는 표현까지 한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직업은 미장공이었다.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일을 못하고 가족을 건사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한 번에 해결해 준 것이다. 미장공과 그의 가족의 생명을 살리신 일이었다.

 

이 후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시작한다.

 

과거에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었을까? 예수님 믿는 기독교인이었을까? 요즘도 오락가락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가슴이 굳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본질은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것도 아니고 주일에 일을 안 하고 병을 안 고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운동, 청년운동을 한다고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완전히 뒤집어엎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적대시할 필요도 없다. 정말 나쁜 놈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한쪽이 좋으면 부족한 부분도 있는 게 사람이다. 나도 그 모양이다.

 

본질은 내 마음이 어떠하냐는 거다. 예수님이 화를 안내시는 분인데 성경에 몇 차례 화를 냈다고 쓰여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이 굳어진 자들(새번역)’, 개역개정은 마음이 완악한 자들이라고 표현한 자들이었다. 오늘 목사님이 설명해 주셨다.

 

근본주의자들의 최대 맹점이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삶을 산다고 여기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앞뒤가 다른 글이 많다. 심지어 네 개 복음서도 글쓴이에 따라 다른 말을 한다. 좌우도 바뀐다. 구약, 신약은 완전히 다른 세상일 수도 있는데 말씀 전하는 사람 의도대로 글자 몇 개 따서 안내하면서 자신이 말한게 근본이며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이런 자들 경계할 일이다.

 

최소한 예수님께 사랑받는 일은 못하더라도 나에게 만이라도 안낼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면 마음이 굳어 있으면 안 된다. 본질은 간데없고 성직자나 가까운 어떤 이들이 성경구절 몇 줄을 모든 것으로 믿으며 그 신념만 옳다고 따르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내가 가진 신념을 의심 하는 게 맞다. 그리고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존재 자체이지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그 어떤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는 순간 망하기 십상이다. 예수께 욕이란 욕은 모두 얻어 먹을 것이다.

 

오늘 교회 청소 후 촬영한 사진.. 진리와 사랑으로 살고 싶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삶이 옳다. 흔들리면서 가장 올바른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20대에 가졌던 나의 신념 키워드는 인권’, ‘참여와 자치’, ‘평화등 몇 가지 단어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흔들어 놓는다. 이를 실현시키고 싶은 당사자가 청소년이었고 청년이었다. 그 가치 실현이 삶이 모두였지만 그들에게 나를 투사한 적도 있었고, 내 신념이 옳다고 여겨서 막무가내 밀고 나갔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 가슴의 신념이 본질은 아니다. 그 본질적인 가장 이상적 가치를 죽을 때까지 삶의 걸음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흔들려야 살고, 나의 신념을 의심해야 산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완악한 것이다. 완악은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하고 타인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너무 싫어하셨던 것 같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주면서 하나님께 이자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며 불쌍히 여기라며 기도하는 분 이신데도 마음이 굳은자들, 완악한 이들에게 화를 내셨다. 마음이 굳는 것은 죄 중에 죄가 맞다.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토론하고 묵상하고 논의하고 경험하고 계속 기도하는 과정에서 알아가는 일이 우리네 삶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사는 삶의 공간에 참여하고 자치한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사는 삶의 공간이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그 평화의 본질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분께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은 먹고 싶지 않다.

 

예수님께 욕먹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가진 그 신념을 더욱 강하게 해라. 그리고 완고해 지시라. 사람은 자기 신념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하시라.

 

 

- 기타상식.

일요일, 교회에서는 주일이라고 하고, 성경에는 안식일이라고도 표현되어 있다. 안식일(Sabbath)'편하게 쉬는 날'을 의미하는데 창세기에 창조주가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하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내용이 기반이다. 7일은 일요일이 아닌 요일상 토요일이라고 전한다. 성경에 있는 안식일은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몇 개 교단에서는 아직도 이를 기념해서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