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예수의 요구에 가장 합당하게 행동한 사람은 롯의 아내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이대 기독교학과 박경미 교수의 글. 기독교 전통에서 그녀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그녀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지만, 그녀야말로 타인의 불행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일 수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기독교와는 다르게 유대교 전통에서는 롯을 연민과 동정 때문에, 결혼한 다른 딸들이 뒤따라오는지 보기 위해, 그리고 그 지역에 남아 하나님의 벌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뒤를 돌아 보았다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그 안의 '죄와 벌' 담론이 어떻게 특정지어 잘 못 형상화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이 핍박받으면서 왜 자신들의 죄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게 했는지에 대한 공부가 없을 때 이 바닥(?)은 죄와 벌 담론에서 한 치 앞도 나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댜는 이 기가 막힌 단순한 교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 입었는지, 기독교인들의 폭력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말이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맹인 거지를 앞에 두고 예수님께 이 자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는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죄의 결과라고 여기는 질문이다.
예수께서는 "누군가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하신다(요9:3).
어떤 이에게 결과로써 나타나는 자신의 고통이 죄로 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같을 수 없다. 최소한 기독교 신앙에서 이 맹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있는 그대로 힘껏 누리면서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 또한 그가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삶으로서 우리가 믿는 신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죄와 벌이라는 우리 사회의 질기고도 질긴 담론을 끊어내는 말씀을 너무나도 많이 했고 기독교가 추구하는 그 본질은 예수께 있는데도 어쩌면 우리는 이와 역행하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해 왔다.
지금 이 시대에도 약자들, 사회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을 살아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장애인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핍박받는 다문화 노동자들, 자신의 성 정체성까지 폭력적으로 무시당하는 성소수자 등 무조건적이고 무식하게 타자를 '죄'로 치환하면서 폭력을 이루는 수많은 일들. 나부터 멈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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