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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예언자적 시대정신이 있을까?

by 달그락달그락 2015. 3. 9.

주한 미국 대사가 김기종이라는 자에게 피습 당했다. 야만적 행위다. 많은 이들이 미 대사를 위로하며 쾌유를 빌었다. 대통령도 해외 순방 마치고 귀국 후 첫 일정이 대사를 위로하며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강조했단다. 빠르게 완쾌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이상한 위로들이 보인다. 애견가인 대사에게 개고기와 미역국을 준다며 찾아간 사람부터 공화당(?)과 자유청년연합 등은 병원 앞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를 했다. 집회에서 호국투승 성오 스님이라는 분은 “대한민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는데 미국의 원조로 지금은 식민지 국가 중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됐다.”라고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석고대죄 단식’을 하고 있다며 트위터에 남겼다. ‘석고대죄 단식. 리퍼트 대사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So Sorry’라고 적은 현수막도 펼쳤다.

 

 

세월호 패악 질로 유명해진 ‘엄마부대봉사단’은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란 문구를 내걸고 쾌유 기원 집회를 가졌다. 이런 자리에 개신교인들도 빠질 수 없었나 보다. 피습 이후 며칠간 SNS를 뜨겁게 달군 사진과 동영상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은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및 국가안위를 위한 경배 찬양행사’를 열어 부채춤과 발레, 난타 공연을 펼친 내용이다.

 

 

SNS상에서는 미 대사의 쾌유를 빌면서도, 우리나라 몇몇(?) 사람들의 너무 과한 쾌유 집회와 위로를 비아냥대는 패러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의 웃기지도 않는 김 씨 일가의 숭배와 연결해서 패러디하고 있다.

 

[18세기 이콘 화가, 예언자 이사야]

 

며칠간의 이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성경의 이사야서를 생각했다. 어제 주일 말씀이기도 했고 우리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문제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진 예언자로 통한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때는 유다왕국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동맹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히스기야 왕 때에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공격 당하여 유다왕국의 존폐가 달린 일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도 억압받고 침탈 받았던 때라는 거다.

 

우리로 말하면 이스라엘 입장에서 일제치하와 비견할 만 하겠다. 이사야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저항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할 것을 호소하였다. 당시 바빌론이라는 거대 왕국에 침략 당해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도 예언자로서 할 말은 했다.

 

“참으로 너희는 기뻐하면서 바빌론을 떠날 것이며, 평안히 인도받아 나아올 것이다. 산과 언덕이 너희 앞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다.” 이사야서 55:12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그런데 일반 백성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신뢰하고 믿었던 신이 어느 날 자신들을 버린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배국인 거대 왕국인 바빌론에 절 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이었다.

 

우리의 일제치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 또한 초기 2%로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가의 상당수를 차지했지만 일제하 막바지에 많은 이들이 변절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일제 치하에 천황에 절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다지.

 

언제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헤겔이 주장한 “그 시대를 관통 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는 관념론적 개념을 들이 데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시대에는 지켜야할 정의로운 ‘그 어떤 정신’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문제는 그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그 어떤 한 순간이 끝나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극소수의 목소리일지언정 그 시대정신을 주장했다고 보인다. 이사야 또한 예언자 전통에 따라 사회적 정의(social-justice)를 주장한 사회적 예언자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야훼의 심판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요, 제련작업으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할 은이라고 불렀다. 사회정의를 중심으로 한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기독교에서 시대정신을 거스른 맘몬의 정신이 일반화되어 기독교적 가치와 정신을 훼손한 역사는 차고 넘친다. 십자군전쟁을 비롯하여, 자연 현상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건, 마녀재판에 극단적으로는 천국도 돈 주고 살 수 있다며 면죄부를 팔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일이었다. 극소수의 예언자와 선지자들만이 문제라고 주장했었던 것만 같다.

 

 

Mark P. Shea: What NBC Did for Mammo

 

요즘의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우리사회에 기독교적 가치를 중심에 둔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다수인가? 극소수의 예언자들이라도 존재할까? 오늘날 우리는 성서적 기반 하에 옳은 일이 무엇이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사회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성서에서 뜻하는 이 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 말이다.

 

요 근래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의 중심에 맘몬의 상징과 같은 돈과 권력에 저항하며 그 시대정신을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야기 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세월호 이후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에게 보여 주던 기독교인들의 양가감정들을 어떻게 이해야 할 것인지? 이번 미국대사의 피습 이후 보여주는 우리 사회 소수인지 일반적 감정인지 모를 보이는 행동 뒤에 숨겨진 우리의 기독교적 가치는 도대체 무엇일까? 숭미에 가까운 이러한 행동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이사야가 행한 행위는 당시의 절대 권력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처절할 정도로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는 것. 이것은 알겠다. 

 

우리 사회의 맘몬의 절대 권력은 누구인지, 우리는 약한 자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처신을 하고 있는지 성서의 예언자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하지는 않을까?

 

나부터 말이다.

 

 

참고

http://www.nocutnews.co.kr/news/4378821

http://www.slrclub.com/bbs/vx2.php?id=free&no=34031398

https://www.youtube.com/watch?v=W_K36EBCjrc

http://www.good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164

http://www.huffingtonpost.kr/2015/03/06/story_n_6813754.html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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