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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용서, 치유를 위한 위대한 선택

by 달그락달그락 2010. 1. 7.

  

   지난주일 저녁 읽기 시작한 책을 다음날 새벽녘 까지 모두 보게 되었습니다. 밑줄 긋고 메모한 내용을 요약해 옮겨 봅니다.

 

   '용서' 제 삶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렵지만 실행하게 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이 책은 용서를 행하는 이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례를 나열했다는 표현일 맞을 것 같습니다. 저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비폭력과 단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세운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손자입니다. 현재,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새해 처음 맞는 주일 새벽 책을 덮고 잠을 자려 누웠는데 잠들지 못합니다. 용서에 대한 다양한 사례의 감동도 좋았지만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가치와 삶이 저의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이상적 공동체의 가치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상적 가치를 논하나 어제 아내가 던진 몇 마디 말에 괜히 심기가 좋지 못한 저의 못난 자아를 보게 됩니다. 사람의 행함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름을 알게 됩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여러 일들이 삶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아이와 놀아주고, 아내와 어머니와 대화하고, 일상의 평온한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식사합니다. 함께 교회가고 교인들과 대화하고, 일터의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합니다. 이러한 일이 쉽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는 편하게 다가가고 가슴 깊은 이야기도 나누지만 어떤 이는 껄끄럽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존경한다는 분들도 만납니다. 이와 달리 간혹 오해 하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았던 부분은 이와 같이 오해하는 것조차도 저에게 이유가 존재했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것입니다.

 

  "처벌과 상관없이 저는 그를 용서할 마음가짐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용서의 과정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중략). 마이클과 이런 불행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신 하나님, 그리고 나 자신마저 용서해야 했습니다." p78

 

  그렇습니다. 모든 일의 문제는 저이고, 모든 일의 잘못도 저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고, 누구에게나 잘못이 있지만 모든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환경 탓, 주변 탓으로 돌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 또한 겸손하다 주장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인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저와 힘겨운 관계를 형성했던 과거의 사람들을 바라보건데 모두가 그들의 오해와 시기와 일방적인 어려움에서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힘겨움 안에 저항했던 적이 있습니다.
   
   "용서하는 일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p.14)"라고 글은 시작합니다. C.S루이스는 용서란 인간적인 공평함을 넘어서서, 절대로 그냥 봐줄 수 없는 문제를 너그럽게 용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용서는 죄를 눈감아 주거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이상의 일이다.(중략) 우리가 용서를 말할 때는, 실패나 고의적인 악행을 덮어 주는 일에 그치지 않고 죄인을 감싸주고 다시 일으켜서 회복시키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 p15

 

   이 책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악행을 마냥 덮어주는 게 아니라고 지속해서 설명합니다.

 

   "용서하는 것과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용서를 구하는 대신 모든 것을 '상황 탓'으로 돌리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음을 설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만약 누군가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면 거기엔 용서도 없다. 그런 면에서 용서하는 것과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정반대의 뜻이다(C.S루이스)." 
   "진정한 용서는 모든 정황을 참작한 후, 아무런 변명 없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또한 죄악의 공포, 혐오스러움, 그리고 사악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 죄를 저지른 사람과 깨끗이 화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참되고 유일한 용서다."p75

 

   결국 당사자가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잘 못을 잘못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랑이 있은 후에 접근해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고 비난과 비판으로 일방적인 책임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결국 사랑이 용서를 존재케 합니다. 저는 사랑 안에서의 신념뿐만 아니라, 정확히 표현하면 순수한 믿음이 존재합니다.
   
  죄의 처벌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용서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p79

 

   공동체적인 어떠한 소중한 가치와 목적을 지닌 단체들을 들여다봅니다. 잘 이루어지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목적과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조직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곳의 문제는 자신들이 공동체를 주장하고 소통하고자 하나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그렇게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며, 정치적이지 않고 삶 자체를 평화롭게 살고자 솔선수범하지 않은 채 타인에 대한 비판이 더욱 강합니다. 여기에서 뜻하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비판적 사고를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기성을 채우려 하며 세상과 다름없는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며 이상향의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주장합니다. 속빈 강정과 같은 논리입니다. 삶 자체가 그렇게 되지 않고서 이상적 공동체를 설파하고 지역을 공생화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될 성 싶지 않습니다. 우리네 조직체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 안의 저를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제가 꿈꾸며 이야기 하는 공동체 이전에 현재의 우리 기관에 구축한 다양한 조직의 틀을 자세히 관찰해야 할 때입니다. 더 중요한 부분은 제안의 저일 것이며 현재의 삶일 것입니다.

   제 안의 저를 다스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구가 많았습니다. 먼저는 의식적 결단과 공개적 선언과 믿음입니다. 저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최상위 가치임을 고백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 증오의 행위를 멈추는 일을 말한다. p19
   공개적인 선언은 그가 지칠 때마다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고, 혼자 암울한 시간을 지내는 동안에 낙담하지 않게 지탱해 주었다. p23
   용서는, 평화를 추구하는 자신들의 열망과 더불어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35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야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의 말씀을 항시 상기시키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가슴 아파 하는 저를 돌이켜 봅니다. 저의 무지이며 저의 부족입니다. 더욱 낮아져 예수님을 기억할 뿐입니다. 결국 나에게 상처 주었던 이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위협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주변의 모든 이들을 통해서도 결국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킹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랑은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힘이다. 미움으로 미움을 맞서서는 원수를 없앨 수 없다. 오직 적대감을 없앰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미움은 그 본질상 파괴하고 무너뜨리지만 사랑은 창조하고 세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구원의 능력이다(마틴루터 킹). p50
   고통을 가하는 당신들의 힘에 우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힘으로 상대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물리적인 힘에 영혼의 힘으로 맞설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양심 때문에 당신들의 불의한 법에 따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과 협력하는 것이 윤리적인 의무인 만큼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일 또한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마틴루터 킹). p.52

 

   사랑은 가장 큰 힘입니다. 저는 사랑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이며 권력이라 믿습니다. 다만 이 사랑을 갖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제 아가를 볼 때면 너무나 쉽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자칫 아가에 대한 사랑이 이기적 사랑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전인적 사랑, 시민적 사랑, 지구촌 시민의 사랑, 세상의 사랑, 전 우주적 사랑,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닮아야 할 사랑의 기록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차이를 인정합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만큼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많은 경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았다. 서로 도움과 용기를 주는 말은 너무나 중요하다. 또 어디에든 선인과 악인이 있고, 인간이란 선과 악의 양면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71

 

   이 글에 따른 선인과 악인이 있다는 의미를 이해합니다. 다만 제 삶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양면이 존재하며 그 양면에서 제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도 선택합니다. 선택은 항상 선을 택하지 못했습니다. 매우 드물지만 불신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겨운 사람입니다. 거의 없다고 생각했으나 존재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용서해야 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용서의 방법은 매우 간단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삶에서의 실천입니다.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이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자식들에게도 그런 짓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쳤다.(중략) 부모님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욕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용서뿐이라고 강조하셨다. p93
   아버지는 두려움과 불신 속에서 사는 것보다 배신당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사람을 믿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늘 말씀하셨다. p100
   아버지는 마지막 날에 가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한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결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면 깊은 곳에 공동체의 특정 구성원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p101
   첫째,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게 오해를 받거나 비난당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을 오해하거나 부당하게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비록 남을 용서하고자 하는 결단이 우리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우리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우리의 내면이 아니라 남에게 용서받았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p102
   "인간은 낙담, 절망, 두려움, 불안, 슬픔, 애통함, 분노, 용서의 고통, 혼란, 의심, 비판과 거절을 겪으면서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달리 충만한 삶을 누릴 길이 없다. 이런 감정의 굴곡이 없는 삶은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꺼이 상처 받을 마음이 되어 있지 않으면 치유 받을 수도 없다.(M.스콧펙)"p106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천국 말고 우리가 모든 사랑의 위험과 불안에서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옥뿐이다(C.S 루이스)."p106
  "서로 권리를 주장하지 말라. 서로 비난하지 말며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내지 말라. 오직 자신을 받아들이듯 용납하고 날마다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하라(디이트리히 본회퍼). p108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부모와 아이 모두 어둠에 갇혀 있어서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두 사람 다 벗어나지 못한 채 사로잡히기 때문이다.p123

 

   결국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랑을 통해 용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체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용서를 조금 더 받아야할 사람과 용서를 '조금' 더 해야 할 사람 둘 중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때, 결국 용서를 '조금' 더 받아야할 사람조차도 힘겨운 어둠에 쌓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인 가해자들이 존재합니다. 살인, 강간, 폭행 등의 극단성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사람간의 관계에서 100% 완벽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드시 힘겹게 한 크기가 다를 뿐 피해자라 칭하는 존재 자체도 어느 정도의 문제는 있습니다. 양측이 모두 어둠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빛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 문을 열기까지 너무나 많은 힘겨움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바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정의감 그 이상이다."(p114),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화해하고 용서한다." (p115)고 이야기 합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안나 프로이드가 지적했듯이 신에게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신은 우리가 정말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느끼는 바로 그때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용서를 주실 것이다."p144

 

   결국 하나님이 핵심적 요체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최대한 빨리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힘으로 완전한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결국 우리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p145

 

   대부흥 운동을 기억합니다. 1844년 독일 블랙 포레스트의 한 마을인 뫼트링겐의 각성운동을 이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술주정꾼 한명의 자기고백과 용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의 평양 대부흥의 원동력 또한 한사람의 자기 고백이었습니다. 진실한 회계에서 촉발된 부흥이었습니다. 뫼트링겐의 각성운동은 감정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적이며 이성적인 자복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용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제에 직면해야 합니다. 또한 역으로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죄를 눈감아 주는 일과 용서하는 문제는 완전히 상반된다(p.152)"고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눈감아 주면 안 됩니다. 특히 나의 죄에 대해서 눈감아 주면 안 됩니다. 상대의 죄를 지적하고 용서하되 항시 문제는 내 안에 존재한다고 믿고 저의 '들보'를 먼저 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항시 인간은 누군가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신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 놓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이들까지 용서하시고 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겨움을 주시는 이유를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경험에서조차 뭔가 긍정적인 것을 끌어내려는 태도에 모든 해결점이 있다는 사실이다.(p156)"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 특히 우리의 힘겨운 고난은 우리를 성숙시키는 가장 큰 도구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고난을 잘 이기고 통과해야 합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화해하고, 기도하며 세상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주변의 모든 이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누구도 아닌 나와 주변의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 가운데 하나임을 믿습니다.


 

http://www.youthauto.net/zboard/view.php?id=culture&no=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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