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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19년간의 평화수업

by 달그락달그락 2009. 7. 17.

 

콜먼 맥카시 선생님의 글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청소년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교육방법과 실제적인 내용들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평화적 가치를 부여 받으며 변해가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글을 읽으며 가슴안의 따뜻함을 전해 받았습니다.

19년간의 평화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기다리는 세상은 “사랑하기는 점점 더 쉬워지고 미워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 사랑의 힘과 진실의 힘, 정의의 힘, 부패한 권력에 조직적으로 맞서는 힘, 이런 힘들이 올바른 것이 되고 반대로 주먹, 총, 무기, 폭탄의 힘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었습니다.

현재의 우리 정세를 보게 됩니다. 같은 민족이나 다른 이념으로 나뉜 나라를 ‘왕따’ 시키며 힘으로 제압합니다. 어쭙잖은 애국심이 이상한 이념으로 변질되어 모든 것을 재단해 버리곤 합니다. 저자는 “평화는 가르칠 수 있으며, 평화에 대한 글들은 방대하여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19년간의 교육과정에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침이란 우리 학교에서의 ‘일방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본을 보이며 가르치는 환경, 태도, 미세한 몸짓, 말투와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시험성적은 어떻게 해야 하며, 경쟁이 아닌 통합적 사고를 어떻게 이끌어 내야 하는지 등의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많은 학습과 훈련이 요구됩니다. 본질적인 평화주의자가 아니면 형식적 교육에 머무르게 되고 맙니다. 평화교육을 한다며 자신이 평화롭지 않고 경쟁하며 상대와 갈등을 부추 켜서는 평화교육가로서의 자질은 이미 없다고 보입니다.

이 분이 일이 많아 교육준비를 잘 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학생들에게 지난 주 자신이 교육준비를 완벽히 하지 못해 강사료를 반납하겠다며 개인별 학생들에게 강사료를 돌려주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인정하며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힘입니다.

책에는 간디, 마틴루터 킹, 아인슈타인, 뮤리엘 레스터, 그웬돌린 브룩스, 클로드 맥케이, 저넷 랭킨, 도로시 데이, 조디 윌리암스, 바바라 추 등 수많은 평화주의자들의 등장합니다.
이 분들의 짧은 글들을 새벽녘에 읽고 있자니 가슴이 뜁니다.

반전운동을 행하며 감옥에 갇히며 어려운 삶을 살았던 래핀에게 학생들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래핀이 대답합니다.
“그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성공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성공적이었다’는 말보다는
‘충실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양심의 문제였습니다.”
“의무와 강압에 의한 것은 진정한 양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p110)라고 강조합니다.

성공과 충실이라는 뜻을 해석하며 결과와 과정에 대한 부분으로까지 전이해 봅니다.

"평화수업에 대해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늘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p269 우리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소통하려고 하나 어렵습니다. 능동적 교육을 이끌어 내려 질문하고 책을 읽으며 함께 나누려 하나 초등학교부터 일방적으로 수직적 교육, 주입식 교육에 숙달이 되어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평화교육의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합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 기계적으로 외우기, 그리고 그 외운 지식을 뱉어내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진정한 배움은 진리를 억지로 집어넣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스스로 찾아낼 때 이루어진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말입니다. 지도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부분입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 낼 수 있도록 행하는 마중물의 역할이 핵심입니다.

인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님의 고별사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평화교육의 구체성을 한국현실에 맞추어 다시금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행하는 다양한 교육방법이나 내용들도 다시금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지도자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만약 폭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평화가 다스리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출처: http://www.youthauto.net/zboard/view.php?id=culture&no=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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