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늘 내 등 뒤에 계셨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 자신을 돌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는
‘앞’만 보고 ‘앞’만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앞에 계신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랐습니다.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 설교를 잘하고 기도를 잘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공에 필요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내 뒤에서 내 자신에게 거부당한 ‘나약한 나’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38년 동안을 아니 영원 전부터 나 자신에게조차 거부당하고 있는 ‘못난
나’와 함께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때 떠오른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겨우겨우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미 함께 계신
분에게 드리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그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의 내면에서 스스로에게조차 용납되지 못하던 바로 나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 김현수 목사의 “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 마을 이야기” 중에서 -
김현수 목사님의 책을 덮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던 하나님을 다시 보게 합니다. 매번 내 자신 안에서
존재하며 나를 이끄신다는 마음으로 생존합니다. 생명 그자체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꿈을 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
존재에 대한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김목사님의 가장 힘겨운 부분을 항상 붙잡고 계셨던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그토록 애타게 만나고 싶으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의 삶에 맞는 행위와 가슴 안의 진정을 꿈꿉니다. 그 꿈이 이 세상에서 그의 나라
확장에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인식하고 바라는 저 조차도 가끔씩 몸서리치게 힘겨운 모습을 제 안에 키우고 있는
저를 들여다봅니다. 세상에서 내 모습으로 나를 다시금 바라보며 그 본질이 아닌 껍데기의 안위에 취해 숨어버리게 되는 저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까지 사랑해 주심을 믿지만 이런 제 안의 제가 너무나 싫은 때가 가끔씩
만들어집니다.
백화점 왕이라 일컬어지는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를
꿈꾸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제가 삶을 영위하는 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그 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근래 제가 닮기 위해 안달했던 분들과 많이도 다른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유치한 저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분 안에서도 섬세하게 일하셨습니다. 그 분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지금도 계속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차이에 대한 구체성이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강조하면서도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수화되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강해졌습니다. 개인적 편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분들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 편견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확신을 가지고 운동(Movement)하는 저의 가치관을 무색하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표현하지 않는 제 가슴이 아파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또 하나의 우상이었을 것입니다.
“있는 그 자체로의 인정”
“보이는 그대로의
인정”
“내면에서 느껴지는 그대로의 인정”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그대로의 인정”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름대로의 아픔도 어찌 보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닦달하는 모습에서 만들어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아프겠지요. 그 아픔이 나의 못난 자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분의 섬세한 아픔은 더 크고 아프겠지요.
김 목사님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의 아름다운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꿈을 꾸어 봅니다.
저에게 맞는 주변의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꿈을 꿉니다.
“제 안의 그 분을 사랑하는 그 느낌 그대로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분이 생명을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모습 그대로의 삶을 꿈꾸어 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그 누구인지 모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바로 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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