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평화
정건희 (군산YMCA 청소년부장)
주일 오후입니다. 지난 8년여 시간동안 주일 오후의 풍경이 다른 이들과 다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후 YMCA회관으로 향합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지만 잠시 후 한명 두 명 찾아오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제 마음도
밝아집니다.
“간사님 뭐해요?”, “식사하셨어요?”, “오늘은 더 네모나 보여요” 등 여러 인사말이 오갑니다. 1시경에 문을
여는데 아이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왜 이리 늦으셨어요?”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전 그저
씨익 웃고 맙니다.
아이들을 만나며 청소년과 운동이라는 단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여러 일들을 겪었습니다. 아이들의 여러 모습에 크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만큼이나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아픔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많이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일을 겪으며 “소통”이라는 매우 소중한 힘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던 초기 저의 기도제목 한 가지는 “내 안의 내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기도를 매번 드리지만 전과는 차이가 있는 평화를 구합니니다. 초기의 평화는 가슴이 안정되고 조용하며 세상의 걱정이 없는 평화였습니다.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이 YMCA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지도력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틀을 내 안에서 내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재 선생님을 생각하며, 존 워너메이커(Wanamaker, John, 1838.7.11~1922.12.12), 존 R. 모트(John R Mott. 1865~1955)를 꿈꾸었습니다. 그 안에 내가 만나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을 그 틀에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도 여름이 오기전인 듯 합니다. 주일 오후 청소년동아리연합회 임원들과 회원들이 대략 60여명이 작은 강당에 모였습니다. 여러 논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간사입장에서 인성교육 비슷한 내용을 전하고 함께 진행해야할 사항을 전하던 도중 제 안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이유인즉, 잠도 줄여가며 온통 내 안의 모든 고민 자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헌신이라며 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지도력은 고사하고 지금 앞에서 장난하며 나누는 논의의 수준이 절 너무나 힘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내가 꿈꾸는 사람들을 닮기 위해 어떤 변화가 보여야 하는데 현재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의 수준이 너무 힘겹게 했습니다. 그러한 여러 시간들을 거치며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YMCA에서 아이들에게 원했던 내 안의 여러 상(相)들이 하나님이 그리도 싫어하셨던 하나의 우상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생명에 따른 자유의지, 다양성 등 참으로 귀한 것들을 많이도 허락하셨습니다. 세계의 60억 인구 중 한명이라도 똑같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는 우상에 맞추어 타인들을 변화시키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YMCA의 이상적인 지도력을 꿈꾸며 훌륭한 선배지도력을 내 안에 갖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선배 지도력을 앞에 세우고 현재의 우리 아이들을 꽤 맞추려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실수이며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생명 그대로의 본질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했습니다.
평화의 의미도 지금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예전에 꿈꾸었던 평화는 천국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가슴 안에 전혀 근심걱정이 없어야 하며 안정되어야 하고 기쁨만이 넘치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 스트레스가 전혀 없이 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마음안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없으면 인간 자체가 성장할 수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모든 이들이 원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가슴 안의 사랑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Movement)이라고 행하는 모든 내용의 중심에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원동력이 바로 그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관계에서 평화를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통이 능동적이고 수평적일 때 청소년운동을 하는 YMCA의 전문지도력들은 전문성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전문지도력과 회원지도력간의 관계형성의 핵심은 소통입니다. 반복해서 설명하지만 그 소통은 사랑 안에서의 평화를 간구하며 만들어 가는 소통입니다. 청소년운동의 회원지도력은 다양합니다. 지역의 유지지도력도 될 수 있으며 전문 실무지도력이 만나는 많은 청소년들도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더 큰 사랑이 있는 소통능력이 요구됩니다.
잘 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 혼낼 수도 있습니다. 포옹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지도력 안에 사랑을 통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변화되어집니다. 실무자의 가슴 안에 있는 우상의 틀을 위한 변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준 바로 그 다양성 그대로의 그 모습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추동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YMCA에서 요구하는 청소년회원활동을 강화하는 전문지도력이란 현재의 제 모습 그대로 바라보건데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평화가 나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욕구가 아닌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임을 믿는다”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들과의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 안에 그들을 위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갈등은 이미 갈등이 아닙니다. 그 갈등은 화합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청소년운동(movement)을 하시는지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가슴 안에 명백히 답은 나와 있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전문지도력이
아닙니다. 전문기능인정도가 될 것입니다. 삶의 주체로서 나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나누는 그 자체에 삶이 목적이 되기를 원합니다.
실무지도력과 회원지도력간의 특수성에 의해 분리되어질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전문지도력은 반드시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청소년 회원활동을 강화하는 전문지도력은 생명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소통하며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바로
YMCA전문지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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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2일부터 열리는 제38차 한국YMCA전국대회 중에
청소년포럼에서 발표할 원고입니다.
"청소년회원활동을 강화하는 전문지도력"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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