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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부적응 청소년이란 없다

by 달그락달그락 2004. 6. 13.

부적응 청소년이란 없다. 다만 부적응 환경이 있을 뿐...

 


  실업계 고교에서 15명을 선발해서 또래상담원으로 양성시키고자 저에게 매주 보냅니다. 몇몇은 학교에서 부적응하는 친구들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측에서는 조금이나마 인성 및 진로 교육 등을 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입니다. 3년여 동안 매주 이렇게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기는 하나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시킬까 항상 고민입니다.


저희 단체회원으로 등록하고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이나 진로진학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학교에서 특별활동 형식은 띠기는 하나 강제성이 있음으로 자발적인 활동을 하는 친구들하고는 다르기 때문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3년 전 처음 이 학교아이들을 받았을 때 의욕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아이들에게 원대한(?) 목적과 비전을 심어주려고 상당히 강압적인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매우 기본적인 방법부터 성교육까지 나름대로의 철학과 상담 방법으로 진행했습니다. 너무 교육태도가 좋지 않으면 가끔씩 억압적인 모습으로 화도 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매년 제 생활이 그렇듯이 그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없기에 연말이 되면 흐지부지 되며 새해에 새로운 아이들을 맡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아이들을 대하면서 요 근래 학술적이고 논리적인 교육만을 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교에서조차 부적응하는데 무언가 배우기보다는 가슴 안의 따뜻한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청소년들(회원)에게는 습관적으로 제 가슴을 열게 되지만 너무 힘겹게 하는 친구들인지라 그러한 마음이 조금은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제 안의 문제가 먼저라는 것을 이해하고 요즘은 기술적인 이론적 내용보다는 가슴을 먼저 열어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이 친구들에게 또래 친구관계에서부터 성교육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설명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건 커다란 인내심과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바뀐 현재에도 반수 정도의 친구들은 휴대폰 문자를 중간 중간 보내는 정도의 교육환경이 조성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경우 화를 내는 표정도 지어 보이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친구들끼리 선생님 좀 쳐다보라며 자신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저 자신을 드려다 봅니다.

 

그 아이들에게 어떤 기술적 교육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힘겨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제 가슴 안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 경험담들 나누면서 편하게 해주려 노력합니다. 2주전에 가장 힘겹게 했던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라며 사왔습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작은 감동이었죠. 날씨가 더워서인지 지난주에는 담당교사의 인솔 하에 여학생들만 7명 정도 왔습니다. 작년에 청소년성매매를 주제로 한 연극공연을 녹화한 테이프를 보여 준 후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혼관과 현재 교재하고 있는 남자들의 성역할 등을 이야기하고 교육을 마쳤습니다.
어떤 내용이 이 아이들을 움직였는지 알지 못하나 두 아이가 남더니 자신들이 선생님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칠판이라도 지우는 거라며 청소를 자발적으로 하며 곧 1학기 교육이 마쳐진다는 것에 대해 많이도 아쉬워했습니다. 전 또 아이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된 것이지요.

 

수년간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 학교에 부적응하고 친구관계에 힘겨워 하는 청소년들의 궁극적인 문제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지 그 아이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근본적인 환경은 개선시키지 않은 채 매번 강압적인 요구부터 체벌까지 청소년에게만 책임을 지게 하는 게 현재 우리 청소년들의 환경인 것 같습니다. 체벌에 대한 문제 하나도 현재 찬반 양론이 뜨거운 나라가 우리나라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기 그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으로 인해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것만이라도 우리 성인들이 이해했으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교사상에 대한 Pamela K. Metz의 글을 옮겨봅니다.

 

"배움의 장이 관용으로 운영되면 학생들은 관대해지고 정직해진다. 교사가 억압적으로 학생들을 다스리면 학생들은 까다로워지고 심술궂어진다. 교사가 더 많은 통제를 하면 학생들은 그만큼 반항하게 된다. 그러기에 슬기로운 교사는 자신의 힘을 부리려 하지 않고 본보기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기의 목적을 분명히 세우되 그것을 밀고 나가지 않는다. 똑바로 나아가되 융통성이 있다."
배움의 도/ Pamela K. M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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