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간의 교육발전진흥재단 이사를 마감하고 오늘 감사패를 받았다. 3년 임기에 한 번 연임 가능한 직위다. 벌써 6년이 흘렀다. 감사패를 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2004년 말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이 출범했다. 당시 나는 지역의 공공 청소년시설을 위탁받아 관장으로 일을 했었다. 청년으로 기관장이 되어 의욕이 넘칠 때 였다.
당시 출범했던 교육발전진흥재단 사업을 들여다보았는데 서울의 종로학원 등 유명 학원 강사를 불러 반에서 1, 2등 하는 학생들만 뽑아서 주말에 무료 교육을 하는 등 성적 우수 학생을 위한 지원 사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학교 지원 사업도 외고에 많은 지원금이 들어갔고, 우수 학생 장학금과 성적 높은 학생들이 관내 고교에 진학 시 인센티브, 명문대 진학 지원 등 철저히 서울권 대학 진학에 집중되어 있었다. 민간 학원도 아니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재단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센터에서 선생님들과 상의하며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이런 사업을 나열하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연히 전문계고 등 지원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런 정책을 좋아할 리 없었다. 내용을 정리해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보도자료 나간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시 공무원이었고, 지금 공공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사람이 무슨 짓이냐면서 설문조사 자체의 문항도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화를 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시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이런 기사를 내는 게 맞느냐?”는 말이 나를 더 빡(?)치게 만들었다.
시 공무원들 중 자신을 갑으로 여기고 공공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사람들을 을로 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시 여러 상황을 만나면서 많이 힘들었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6년 전 바로 그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의 이사에 내가 추천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국가인권위, 여성가족부 등 관계 부처에서의 활동은 꾸준히 했으나, 지역의 공공기관 이사나 관련 직은 대부분 고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지역 관계에 괜히 얽히고 싶지도 않았고, 활동하는 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재단은 달랐다.
이전에 내가 그렇게도 피곤해하고 힘들어했던 지역 교육정책에 조금이라도 관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바로 수락한 후 벌써 6년이 지났다. 현재 재단 사업은 우수 학생 지원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학습 지원, 느린 학습자 지원, 예체능 지원, 진로·진학 컨설팅, 기능·상업·과학 분야 장학금, 지역인재 장학금 등 다차원적으로 접근되어 가고 있다. 시정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공무원들이 직접 재단 기금을 운영하면서 사업까지 진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행정이 전문적인 분들이 사업까지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문가들 들어와서 활동 할 수 있는 사무국 설치에 대한 내용도 1년 넘게 주장했었고, 교육청과 협의하며 시의회도 통과하고 거의 실현할 수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교육청의 정치적 문제로 무마되었던 일도 있었다.
여러 기관에 자문이나 컨설팅을 한 경험이 많다. 그 중 오늘 연임 기간이 끝난 재단이사는 애착이 조금 있다. 애증의 관계 때문인 듯 싶다.
새로운 이사님들이 좋은 분들이실 거다. 선거도 끝났고 시장님도 바뀌었으니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지역 교육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 전 공동이사장으로 이항근 전 교육장님이 선임되셨다.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있는 분이셔서 앞으로도 잘 추진하실 것이다.
여러 일이 많은 상황에서 어찌 하다 보니 하나씩 내려놓기도 하고, 또 하나가 올라가기도 하는 시간이다. 돌아보니 시간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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