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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화와 책

참교육

by 달그락달그락 2026. 6. 7.

 

참교육은 비폭력이었다. 모든 교사들이 학생들을 개(?)패듯이 두들겨 팼어도 참교육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대화 하려고 노력했다. 야만의 시대에 참교육을 실현하려고 삶을 걸었던 초기 전교조 선생님들에게서 이상적 교사상을 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80년대를 넘어 90년대까지 우리 학교는 매우 폭력적인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 참교육은 아주 작은 빛과 같았다.

 

참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며, 창의적인 전인교육을 추구했다.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통해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참교육이라는 드라마는 그 반대에 서 있다. 교권침해가 심해서 학교는 학생들이 교사를 가해하는 곳이 되었다. 학생들 중에서도 일진 무리가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사들을 일진 무리가 가해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드라마 장면 중

 

교사를 괴롭히는 학생을 두들겨 패고,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에게 불을 붙여서라도 참교육(?)을 시킨다. 심지어 교사가 자각하여 학생을 위해서 가해 학생에게 문제 풀게 하고, 거부하자 손바닥을 때리는 장면이 교사상이라고 부각하는 것만 같았다. 몇 편 보는 내내 불편을 넘어 짜증을 유발하게 했다.

 

요즘 사회적 관점에서 학생은 교권을 침해하는 아주 나쁜 놈들로만 그려진다. ‘참교육이라는 드라마가 그 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현재 넷플릭스 1위를 찍었다. 정의 실현이라는 구호 아래 드라마의 대부분의 학생은 일진을 넘어 거의 조폭과 사이코패스 수준으로 그려진다. 플롯이나 전개, 내용적인 여러 측면에 문제를 거론하기도 바쁜 작품이다.

 

원작인 웹툰의 인종 및 성차별 논란, 감독관들이 학생들의 뺨을 때리며 두들겨 패며 체벌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 페미니즘 교육 교사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사이다'로 표현했다. 페미니즘 교육을 반공 세뇌와 동일시해 성차별적 작품으로 이미 논란을 빚었다. '소년심판', '디어 마이 프렌즈'를 만들었던 홍종찬 감독이 연출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등을 썼던 이남규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원작의 한계를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10여 년 전에 이 드라마가 나왔다면 1위는 고사하고 감독과 기획사는 사과하며 사회적 문제로 번지지 않았을까?

 

언론의 문제는 한두 번 지적할 게 아니지만 학생, 청소년을 그리는 우리 사회 담론을 형성해 가는 언론은 매우 폭력적이고 게으르다.

 

8, 90년대에 학교는 정글과 같은 곳으로 야만의 시대로 기억한다. 수업 시간에 좋은 교육을 했던 선생님도 계셨으나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오늘 며칠이냐?”고 묻고 “5일이요라고 학생들이 답하면 그때부터 두들겨 맞는 시간이었다. “5, 15, 25, 35... 나와서 이 문제 풀어.” 50여 분의 시간은 그냥 공포였다. 문제 풀이를 틀리면 계속해서 맞았다. 영어 시간도 무조건 외워야 한 시간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따귀는 예사였고, 학생을 때리는 몽둥이는 이름까지 붙어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시대였다.

 

그 당시 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지금 학부모들이다. 당시 자신이 학교 다녔던 때를 돌아보면 그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거의 폭력의 세계였다. 그 안에서 자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열만이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반면 최근 학교는 교권을 중심으로 한 학부모들의 갑질과 학생들의 학교폭력 등에 의해 교사들에게는 지옥에 가깝다. 과연 그런가? 현실을 살펴 보자.

 

교권침해 건수를 교육부에서 내놓은 통계자료로 살펴보면 2014년도 4,009, 20153,458, 20162,016건으로 2018년까지 꾸준히 감소하다가 이후 2019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코로나 시기인 2020년에 크게 줄었다가 2021(2,269)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특히 2023년은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침해 신고와 심의가 급증하면서 5,050건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권침해를 신고하는 문화가 커졌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청에서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면서 통계가 증가했다.

 

둘째, 학생의 권리 강화와 생활지도 방식의 변화다. 이 부분은 지금도 논쟁적인데 참교육 드라마의 핵심 주제로 연결된다. 2000년대 이후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등이 확산되면서 교사의 권위가 약화되었다는 관점으로 보는 이들이 많으나, 다른 지점이 많아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나는 학생 인권 확대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교사와 학생 관계에 맞는 긍정적인 지원체계에 대한 고려보다는, 무조건 서로를 적대시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 이익단체와 언론의 문제, 정치인들이 헤짚어 놓은 문제가 집합되었다고 여긴다.

 

셋째, 학부모 민원의 증가다. 최근 가장 부각되는 지점이다.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인데, 학부모의 반복 민원, 부당한 요구, 명예훼손 등의 사례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소위 빌런 학부모의 출현이 많아지고 있다.

 

"학부모의 내 자녀 중심주의""학교·교사에 대한 불신"이 강한 학부모들이 많아 보인다. 악성 민원,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아동학대 고소 등 법적 수단을 동원한 침해가 급증하면서 교사들이 느끼는 위축감과 체감 침해율은 과거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참고자료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 ‘학교구성원의 교육활동 보호 인식 연구등을 요약함)

 

정리해 보면, 학생의 직접적 폭력은 장기적으로 감소했고(참교육 드라마와 전혀 다른 점), 학부모 민원과 법적 분쟁은 증가했으며, 학교가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은 약화되었다.

 

, "교권 대 학생인권"의 대립 구도에 집중할 게 아니다.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어떻게 하면 늘릴 것인지, 그 안의 갈등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맞추어야 옳다.

 

드라마는 거의 파시즘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한두 명 힘 있는 사람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권위에 순종시켜야 하고, 그 권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니 그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한정의 폭력도 정당하다는 논리다.

 

다시 문제 풀게 하고 두들겨 패도 사랑의 매라며 교사들을 옹호했던 8, 90년대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전교조의 참교육현실은 어떤가?

 

과거 전교조 참교육의 이상에서 벗어나 교사 중심의 권익 옹호로 변질되어 갔다. 특히 학생인권조례 운동에 소극적이었던 태도가 현재의 포퓰리즘적 노동조합 성격으로 이어지며 학생 인권보다 교사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의 교육 75>에 실린 내용이다.

 

전교조의 참교육은 이상이었나? 이상으로 치부하고 현실 노조원의 권리 옹호에만 집중한 결과가 오히려 이런 드라마의 제목이 참교육이어야 하는 역설을 만든 것은 아닌가?

 

내가 80년대 중고교를 다녔을 때의 참교육의 이상이 지금쯤이면 실현됐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신탕을 즐겨 먹었던 때, ‘개패듯이라는 표현은 그때 나왔다. 보신탕이 맛있으려면 개를 잡아서 매달아 몽둥이로 두들겨 패야 고기 질이 좋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보신탕 문화에서나 볼 법한 개패듯이 패서라도 잡아먹어야 할 대상이 학생이 아니다. 교사도 사람이고 학생도 사람으로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존엄성이 있는 존재다.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해서 폭력으로라도 타파해야 할 대상이 되는 순간 모두에게 끔찍한 세상이 되고 만다. 파시즘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7, 80년대의 학교를 살아 냈던 사람들은 그 끔찍한 공간을 기억한다.

 

참교육과 같은 드라마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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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3편까지 보고 끄적인 글. 더 이상 보기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