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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화와 책

내 안에 황동만 있다 :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6. 5. 1.

짧지만 대사를 기록해 놓은 드라마가 몇 편 있다. 그중 두 편이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다. 일년에 한두 편 볼까 말까 한 드라마 중 나의 아저씨는 내 안에서 너무 소중한 추억이 있는 작품이다.

 

이 분 작품은 항상 삶이 힘들고 외롭고 불안한 존재가 중심을 잡는다. ‘나의 아저씨에서 중년 박동훈(이선균)이 그랬다. 21살의 이지안(아이유)은 살인까지 했던 고통스러운 삶을 부둥켜안고 있었던 청년이었다. 그들의 지치고 고달픈 삶 안에서 어떻게든 인간만이 갖는 그 순수함을 붙들어 살아 내는 모습과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서로를 연결하려고 하는 따뜻함이 좋았다.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도 그랬다. 아프고 상처가 있는 삶, 회사라는 공간에서 안간힘을 붙잡고 살아 내는 모습이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들과 닮아 있었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기획의도 중 이런 글이 있다.

 

여기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못 나가 시기와 질투로 미쳐 버린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가 꼴 보기 싫어서 미치겠는 친구들. 어금니 꽉 깨물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 한 인간과 역시 어금니 꽉 깨물고 그런 그를 끌어안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이곳에 있다. 그동안 박해영 작가 작품 주인공 중 이런 빌런(?)은 처음이다. 자신의 부족하고 망가진 부분을 더 노력하거나, 또 다른 선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다. 드라마 소개 글에서처럼 시기와 질투에 거의 미쳐 있는 황동만(구교환)이 주인공이라는 것. 박동훈 과장도 아니고, 염미정도 아닌 피해의식과 시기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어디서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황동만이라는 점이 문제다.

 

드라마 본 분들의 글을 몇 개 읽었는데 대부분 황동만에 몰입하면 짜증이 난다는 표현을 한다. 주변에 이런 사람 만나서 너무 괴로웠다는 사례까지 등장할 정도다. 망작이라는 비난까지 서슴없다.

 

사회적으로 황동만은 빌런이 맞다. 문제는 우리 안에 황동만이 모두 숨어 있다는데 있다. 어떤 이는 황동만처럼 무식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 놓고 자기는 아니라고 무시한다. 내 속을 아주 깊이 들어가 보니 또 다른 황동만이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래도 나는 자칭 성숙한 시민이니 절대로 들키지 않을 뿐이다.

 

황동만이 왜 문제냐고 하니 무능해서라는 답이 나온다.

무능이 뭐예요?”, “요리사래. 근데 요리를 못 해. 교사래. 근데 가르치지를 못 해. 인간이래? 인간적이지 않아. 가장 무능한 거 아닌가?”

 

여기에서 내게 가장 아픈 부분은 인간인데 인간적이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요리사나 교사가 자기 일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이와 전혀 다른 존재의 문제다. 인간적이라는 게 뭘까?

 

황동만의 불안은 인간적이지 않은 것일까?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새끼야.”

불안하지 않은 거.”

 

황동만이 진짜 원하는 것은 불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떠벌리고, 비난하고, 막 주워 먹고, 자기를 싫어하고 증오하는지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비집고 들어가 또 질투를 폭발시킨다. 인간이니 불안한 것 아닌가?

 

황동만의 작품에 파워가 없어서 재미없다는 신랄한 비판을 당하고, 황이 묻는다. “파워는 어떻게 얻어요?” 그러자 사랑하는 사람이요.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힘이 생겨요.”라고 답한다.너무 인간적인 답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생긴다는 것. 그 사랑의 대상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겠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만나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다.

 

변은아(고윤정)는 사장과 직원들에게 선전포고하며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나약함을 목도한 느낌. 싸워볼 만하다는 느낌”,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걷어 올릴 거야. 나의 빛나는 스토리를 기대해

 

돌아 보면 우리 모두 황동만이 있고, 변은아도 있다. 8인회의 친구들도 있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도 있고, 나를 보면 황동만 보듯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어딘가 한 부분 망가져 있는 사람들이고, 삶의 공간 또한 불안하고 힘든 사회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자기 가치를 내 보이면서 행복을 찾아가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 내고 있다. 내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종교에서 죽음 이후에 천국을 매번 꿈꾸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곳이 절대로 천국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황동만’,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에 인간다운 무가치함을 붙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가치는 중요하고 의미 있으며,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 중요함과 판단의 기준은 인간이기에 모두가 내릴 수 있는 자기 선택권이 있다. 경제적 가치로서 얼마나 쓸모 있고, 교환 가능한가만을 본다는 것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모습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동물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철저히 생존에 집중한다. 인간도 그렇지만 그 안에 생존을 넘어 행하는 모든 일은 생존과 견주면 어쩌면 모두가 무가치한 일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은 먹고 사는 일이다. 이를 넘어서는 대부분 우리 삶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일이 왜 가치 있는 일이 될까? 영화와 문학, 음악, 철학, 여행, 역사, 운동, 게임 등 인간만이 누리는 수많은 행위들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는가? 결국 개인의 자기 관점과 고민이 이를 붙들게 한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붙들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황동만이 조금도 없는가?

나는 회사 사장의 그 갑질과 못난 모습은 없는가?

나는 뒷담화하면서 남을 비난하던 8인회 친구들은 아닌가?

나는...

 

그저 돌아보며 생각하건대 나는...’ 또한 나는...’이었다. 이들 사이 그 어느 수준에서 멍 때리면서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그 무엇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이지만 이곳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우기면서 그저 한 귀퉁이에서 내가 기준으로 삼은 가치고 그것이 무가치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황동만과 그 안에 얽히고 설킨 그들 모두에게서 내 모습이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