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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손절사회와 외로움의 역설

by 달그락달그락 2026. 4. 20.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을 넋 놓고 볼 때가 있었다. 한두 달 보다가 접었다. 출연하는 분들이 거의 두 부류로 나뉘어 보였다. 한 부류는 몸이 아픈 분들이다. 병에 걸려 치유하기 위해서 자연에 들어온 분들이었고, 또 한 부류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분들이었다. 이 분들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한 분도 있었고, 가족 간 갈등을 겪으면서 산에 들어온 분들도 있었다.

 

2000년대 넘어오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보다는 선을 긋고 자신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쪽을 택해야 한다는 책과 강연이 쏟아졌다. 최근 청소년들의 손절은 문화가 되었다. 달그락의 선생님들도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이 부분이 걱정이라고 했다.

 

최근 나온 손절사회에서 이승연 작가(사회학자)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된 손절문화의 배경과 원인을 정리했다. 전 영역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지배와 확산, 치유 문화의 확산 등 몇 가지를 주요한 키워드로 설명한다. 신자유주의는 무한 경쟁과 효율의 논리로 설명된다. 인간관계에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이전에 함께 활동했던 후배가 대기업에 입사했다. 후원 때문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사무실 분위기의 딱딱함과 대화 없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함께할 때 장난도 치고 대화도 많았는데 이곳은 하루 종일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며, 메신저와 전자결재 등으로 업무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치유 문화의 확산에 대한 흐름도 광범위하다. 책과 인스타, 유튜브, 페북 등 온갖 공간에서 손절해야 할 사람들을 나누어 설명한다. 관련 책들이 많이도 팔렸고, 지금도 계속해서 출판되는 중이다. 사람에게 상처받지 말라면서 손절하는 방법과 선 긋는 방법 등의 강연과 영상도 쏟아졌다.

 

치유 문화에 힘입어 관계를 정리하는 책과 강연에서 관통하는 메시지는 모두 같다. 과거에는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책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관계를 걸러내는 능력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간관계의 목적이 나 자신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인가?

 

요즘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잘 맺지 않는다. 가볍게 연결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관계를 선호하고, 그런 모임이 잦다. 그나마 이런 모임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찾지 않는다. 사람 관계의 갈등이 부담스럽고, 상처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20여 년 전보다 한국인들은 더 외로워졌고 불행해졌다. 몇 년 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50%가 넘는 사람들이 외롭다. 특히 청년들이 더 외로워졌다(갤럽 인터내셔널과 메타가 낸 세계 사회 연결 현황 보고서에서).

 

노년층보다도 2, 30대 청년은 더 외롭다는 분석은 여러 연구에서 자주 나온다. 심지어 성관계(sex)60대보다 20대가 더 적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연세대 염유식 교수 팀 연구보고서).

 

신자유주의와 치유 문화, SNS 등 온라인에 집중되어 있는 세대인 청소년, 청년들의 삶에서 인간관계의 수준은 매우 낮아지고 있고, 손절은 그들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썸만 탄다는 말이 너무 일반화되었는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깊은 관계는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들린다.

 

외로움은 병이다. 세계 각국, 특히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했고, 우리나라 과기부 만들 듯이 외로움부를 신설해서 외로움을 퇴치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실행 중이다.

 

경쟁에 올인하는 현재 우리 사회 문화는 사회적 관계 단절까지 문화로 만들어버렸다. 온전히 자신의 심리적 건강함을 위해서 타자와의 관계를 끊거나 잘 맺지 않으면서, 그 결과 역설적으로 외로움이라는 병에 걸려 더 불행하고 아픈 사회가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힘들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그 순간 피곤하고 지쳐 있는 사회인들이 대부분이다.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인간관계 안에서 일해야 산다. 이것을 인식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고 잘 만들어가야 한다. 갈등은 관계가 좋아지는 기회이고 필수적 요소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그 해결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너무 커졌다.

 

취약성은 사랑, 소속감, 기쁨의 원천이다.” 브레네 브라운의 말이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으면 깊은 관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에리히 프롬도 그 유명한 사랑의 기술에서 고통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사랑은 기술이며, 노력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라는 말이다. 칼 융은 상처는 관계의 증거라고까지 했다. 인간관계의 상처는 단순한 손상이 아니라 변화와 관계의 흔적이라는 뜻이다.

 

관계를 끊거나 피하면 타자에 의한 갈등은 사라지겠지만 공허하고 고립감에 외로움은 커지기 마련이다. 수만 년간 내려온 인간관계의 역설이다. 결국 상처를 없애려는 삶은 사람을 제거하는 삶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