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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시민이 사라진 선거, 공천이 지배하는 정치

by 달그락달그락 2026. 4. 19.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시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대변하는 불안정한 제도다. 정당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정당의 소수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시민들의 의견이 아닌,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기 위한 선거를 하는 순간 민주주의가 아닌 이상한 기득권 정치가 되고 만다.

 

특히 전라, 경상권의 상당히 많은 지역이 그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모양새다. 후보들은 시민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공천을 주는 자의 눈치만 살필 뿐이다. 심지어 공천을 주고 나면 시민들은 투표조차 할 수 없다. 야당이 없거나 여당이 없는 투표용지를 받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못하는 무투표 당선까지 넘쳐난다.

 

군산에서 지난 2022년 민선 8기 시·도의원 15명 정도의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됐다. 도의원과 시의원이 시민들의 투표도 없이 당선됐다는 말이다. 이 쪽 동내에서 그렇게 비판하는 대구는 어떤가? 광역시의원이 20명 무투표 당선된 것으로 보도됐다. 군산이 인구 수 대비 무투표 당선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시민들이 아닌 공천을 주는 사람이 시·도의원을 임명한 것과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만들어졌나? 정당 공천이 당선 보증서가 되었고, 지역 정치는 특정 정당이 우위를 점하면서 경쟁이 없으며, 선거제도에서 중선거구제는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지만, 현실에서는 후보 수 맞추기가 무투표 당선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낳아 버렸다.

 

이번 선거는 더 심각해 보인다. 시민들은 거의 안중에도 없다. 그저 정당 공천이 자신을 당선시키는 일이 되어서 시민보다 공천권자만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의원은 지자체장을 견제해야 하고, 행정에 대한 감사도 해야 하는데 후보들이 특정 진영으로 나뉘어 시장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들은 시장 후보와 연대한다면서 언론플레이는 계속되고 있고, 그 옆에서 지지 선언하는 시·도의원 후보들도 넘친다.

 

정치인을 뽑는 선거를 할 때에는 인물에 휘둘리지 마시고요. 인물, 악수 모두 제쳐 놓고 정책을 물어보십시오. 보통 사람을 위한 정책이냐? 부자를 위한 정책이냐? ... 당신의 성장 방법은 뭐냐? 경제 성장의 수단은 무엇이냐?” 노무현 대통령 퇴임하시고 봉하에 계실 때 시민들이 선거철에 찾아갔을 때 하신 말씀이다.

 

후보들 중 나름의 정책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런 것 없이 거의 조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으니 너도 나를 찍어라.” 뭐 이런 모양새다. 정책도 없고 비전도 없다. 그저 극소수의 당원이 선정하는 구조이고, 그 당원을 누가 챙겼는지가 대표를 뽑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이전에 군산에서 평생 삶을 바칠 것처럼 하셨던 시장께서 3선까지 역임하고 지역을 떠났다. 그분이 설정한 "50만 국제 관광 기업도시 실현"이라는 비전을 듣는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당시 도부터 관련 연구원들이 내어 놓은 인구 추계는 현재와 거의 같았다. 인구 50만은 누군가 꿈을 꾼 환상이거나 건설업자들의 농간으로 정리된 숫자에 불과했다.

 

현실성 없는 비전으로 인해 아파트는 넘치도록 지어졌고, 이후 책임지는 사람들 없이 그 아름다운 시민들의 공간인 은파 주변도 난개발로 아파트 천지가 되어 버렸다. 구도심은 점점 늘어나고 학교도 신축하면서 버려진 수 많은 공간에 의해 슬럼화 현상은 가속화 되고 있다.

 

정치인들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시민들의 문제도 한몫한다. 정책을 제안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안내하거나, 문제가 있을 때 저항하거나, 무슨 일이라도 해야 옳다.

 

국민의힘은 거의 자멸하는 수준이나, 아직도 대구·경북의 시민들은 그들을 상당히 지지하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곳은 작은 희망의 불씨가 있다. 민주당 등 여당이 나와서 지더라도 30% 정도의 득표율은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다.

 

이 쪽 전라권의 군산과 같은 일부 지역은 어떤가? 경쟁 자체가 없다. 선거 제도 개편이든 뭐든 제도 자체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시민들을 대변하는 대표가 아닌, 극소수의 관계와 이권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문제는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정말 오랜 시간, 청소년들, 청년들이 제안한 정책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개발해서 후보들에게 가져다 날랐다. 제안하고 부탁하고, 설명 드렸다. 올해에도 그럴 것이다. 뭐라도 해보려는 발버둥이다.

 

당선되기 전에 뭐든 할 것 같은 후보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 청년의 의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후보도 있다. 그들의 권력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시민이 아닌 그 누군가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한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만 같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는 이미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민주국가에서 사는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살 수 있다.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계속해서 무엇을 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원한다고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정책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살아 갈 나와 내 자녀와 청소년, 청년, 우리 모든 시민을 위해서다.

 

늦봄이다. 하늘은 이미 여름이 왔다가 손짓하는 것만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늦봄. 요즘 정치판 생각하면 조금은 슬픈 날이기도 하고.

 

문익환 목사님도 그립고, 노무현 대통령도 보고 싶은.. 그런 늦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