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에 청소년들과 뒹굴면서 살 때가 있었다. 선생이라고 칭했지만 형인지 오빠인지 모를 정도로 장난도 심하게 쳤다. 위아래도 없었다. 그때는 그게 좋았다. 나이 몇 살 더 많은 선생이라는 위치로 내려보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장점이 있었다. 허물없이 어울리다 보니 청소년들 속내를 너무 잘 알게 됐다. 수평적 관계이니 내 관점으로는 선생이나 상담자의 전문가로서의 위치가 아니었다. 관계의 질은 깊어졌고 이로 인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청소년들과 관계하면서 조직 생활을 터득한 게 하나 있다. 조직 내 권력 있는 누군가가 권위를 내려놓는 순간 그 공간은 매우 편해진다. 연차가 작거나 약할수록 더 편해진다.
부서를 혼자서 맡아 운영하다가 시간이 가면서 직장도 바뀌고, 새로운 기관도 만들면서 부장, 관장, 사무총장, 소장, 상임이사, 대표 등의 명칭이 뒤에 붙기 시작했다. 후배들을 만났다. 30대에 기관장이 된 후 후배들은 강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무리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후배들은 현장에서 너무 치열하게 부딪쳤다. 장점도 있었지만 관계는 천차만별이 됐다.
시간이 가면서 공간이 편한 게 좋았다. 나이 관계없이 편하게 다가가 장난도 치고 허물없이 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들이대면 그들도 무장 해제하고 편하게 자기 속마음을 내비쳤다. 나도 편하게 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어 갔다. 기관장이 되면서 더 낮출수록 사무실 분위기는 더 좋아진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반대로 어설픈 권위를 세울수록 어린 후배들은 다가오기 어렵고, 사무실 분위기도 무거워진다.
다만 분위기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아야 할 일이 많아진다. 권위를 내려놓았으니 다른 기관에서 기관장이 받는 어떤 예우나 예의 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내 딴에 노력한 사무실 분위기는 나름 밝았다. 2, 30살 차이가 나도 격의 없이 지내려고 노력해서인지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청년들과도 그리 큰 벽이 없이 지내고 있다.
오래전 청소년들과도 그랬지만 지금의 나도 청년들이나 후배들과도 가능한 편하게 지내려고 한다. 나이가 2, 30살 차이 나도 관계없다. 29살이라고 오랜 시간 구라(?) 치는 일도 자연스럽다. 편하게 들이대고, 장난도 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속내도 비출 때가 많다. 다만 어쩌다가 ‘현타’가 올 때가 있다. 그들 중 정말 내가 자기 친구인 것처럼 막 대하는 이를 만날 때다.
기분 좋고 밝은 공간은 결국 서로의 존중에서 온다. 상대가 편하게 한다고 해서 정말 편한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될 때 관계는 틀어진다. 나 또한 편하게 대한다고 너무 편해 질 때 상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내 못난 모습을 돌아 볼 때가 잦다.
특히 사적, 공적 영역에서의 선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관(회사) 내에서 엮인 조직적 관계도 이전에 만났던 청소년, 청년들과의 관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려고 했다. 관계가 좋아지니 일의 느림이나 문제, 역량의 부족 등 여러 문제도 최대한 수용하면서 안고 가려는 노력도 컸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은 친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며 관계가 좋은 것과 조직 비전을 이루는 활동가, 동지로서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조직은 반드시 만들어진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곧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를 이루는 데 역량이 부족하고, 관련 공부나 노력도 등한시하고 그 일의 성장이 전혀 없는데 관계만 좋다고 해서 함께하는 것은 서로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
어떤 이들은 활동하는 청소년자치연구소(달그락)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반면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힘겨운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상대적이다. 역량의 차이도 있고 잘하는 게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자신에 맞는 공간이 있다. 리더나 팔로워도 자신에게 맞는 이들이 있다. 관료적이고 관리를 잘하는 리더(또는 팔로워)를 좋아하는 이도 있고, 자율적이며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믿고 권한을 부여하고 맡기는 이를 좋아하기도 한다. 모두가 다르다. 이 바닥의 영역도 활동, 교육, 복지, 보호, 상담, 자립 등 수많은 청소년, 청년의 영역이 있고 모두가 일의 전문성은 다른 차원에서 접근된다. 따라서 그 다름 속에서 자신이 가장 맞는 곳을 찾는 게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내가 연구소나 길청에서 집중하는 좋은 관계는 ‘비전’을 이루며 평생을 함께할 동지다. 그 안에 필요한 역량이 있어야 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다. 청소년과 이웃을 만나는 성품도 좋아야 하고 함께할 때 ‘시너지’가 만들어지는 이들이다. 단지 관계만 좋고 분위기 좋으니 그냥 함께하는 일이 아니다.
최근에 여러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많다. 앞으로 10년 내외가 너무 중요하고 그 사이에 이 조직의 1세대가 사라져도 계속해서 운동성을 붙잡고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수준을 더 높여야 옳다. 관계에 매몰되어 조직 비전을 이루기 어려운 이들과 계속 한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만들어 질 수 있다.
사회적이며 공적 공간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한다면 그 안의 관계를 뛰어넘는 개인의 비전과 자기 역량, 그리고 연대의 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점을 알아 채고 정신차리고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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