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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좋아요 많은 글이 정말 좋은 글일까?

by 달그락달그락 2026. 3. 23.

 

페북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초기 좋아요수와 댓글에 관심이 많았다. ‘좋아요가 많으면 기분이 좋았다. 관심받는 기분이었다. 몇 년 끄적이다 보니 어떤 글이 좋아요가 높은지 알게 되었다.

 

연예인이나 유명 작가나 정치인을 제외한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글 중 유독 공감을 많이 얻는 글이 있다.

 

축하하고 위로받을 일, 감정적 글, 자기 삶의 솔직한 내용, 저격·비난하는 글, 이슈, 촌철살인의 짧은 글과 사진, 정치인() 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관심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준다. , 내가 노력했거나 의도했던 의미,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 관심을 받는 이유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거철이어서인지 정치인들과 대화할 일이 많다. 어떤 정치인이 내 글이 좋다면서 다른 정치인들도 읽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순번을 매겨서 짧게 단타로 올리는 게 어떻냐는 제안까지 받았다. 매번 글 올릴 때마다 반응해 주는 극소수의 분들 중 한 분이다.

 

조회수나 좋아요가 수천을 넘는데도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생산하지 않은 글이나 사진, 정치 기사를 안내할 때다. 카카오스토리나 스레드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스레드는 한 달 다녀간 사람 수가 100만이 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데도 별로 감흥이 없다. 글의 내용은 계엄령, 내란을 비판하는 기사와 한두 마디 붙인 글이 대부분이다. 특히 개신교 중 극우집단의 폭력적인 언동을 안내하며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 이런 글은 1, 2분이면 끄적여 올릴 수 있다. 정치인, 기자, 시민운동가, 학자들이 주변에 많아서 관련 글 선택하기도 쉽다.

 

그저 지인의 글이나 기사를 읽다가 비판 지점이 있으면 캡처하거나 링크를 걸면서 할 수 있는 한두 마디 끄적인 수준인데 댓글과 좋아요는 폭발적이다. 그 글에 호응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스레드에는 긁힌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비난한 내용도 많았다. 내란 이후 극우 개신교인들에게 특히 많은 비난 글을 받았다.

 

이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수많은 이들이 비판을 하고 있다. 고민한 지점은 있으나 그저 배설하듯이 비난을 공유한 정도다. ‘좋아요수백, 수천 개 달리니 기분이 좋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보 또한 내가 만들어 낸 게 아니다. 그저 기사나 사진을 가져다가 사회 비판적 내용에 대한 한두 마디 거들었을 뿐이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는 것은 내가 전달할 어떤 메시지나 정보, 해석의 관점, 철학적 사유나 경험이 있어서다. 그런 글을 안내할 때 친구들이 공감하기도 하고 비판할 내용은 정중히 안내해 주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은 관계와 배움의 터다. 나에게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는 공간이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가르쳤던 학생이 군대를 제대하고 찾아왔었다. 생각도 많고 열심히 활동했던 청년으로 기억한다. 집도 경기도 쪽인데 군산까지 찾아왔었다. 외국에 파병도 나갔다가 왔고, 군에서 책도 많이 읽었다면서 자기는 유명 강사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했다. 어떤 내용을 강의할 것이냐고 물었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며, 자기계발서를 조금 읽다가 유명 강사를 보니 강연하면 많은 수익을 얻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좋아 보인다고 했다.

 

배고프다고 해서 밥을 사주면서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강연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메시지나 정보, 연구물이나 특별한 경험, 자기 삶의 알릴 수 있는 어떤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는 당연히 내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초기 클릭 수가 돈이 된다는 말에 어떤 이들은 형광등을 뜯어 먹고, 자기 다리를 차 바퀴에 넣어 고통스러워하는 아픔을 찍어 올리는 이들이 있었다. 사이버레커라고 칭하는 이들은 남을 죽이려는(실제 자살한 이들이 여럿이다) 짓을 서슴없이 한다. 그저 돈이 되는 관심병 환자들로 보인다. 아직도 그 관심과 클릭 수, 좋아요 수는 권력이고 영향력이 되어 생명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아 보인다.

 

좋아요에 취할 일이 아니다. 내가 쓰는 글과 사진, 영상이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지, 어떤 상황과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가 좋아질 수 있는지, 상대를 위로할 수 있는지, 환대하며 나누고 관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 보인다.

 

운영하는 기관에 청소년들이 매년 공저로 책을 출판하는 자치기구가 있다. 그중 11년 만에 첫 단독 저서가 나왔다. 책이 나온 후 공저 책과 단독 저서 두 권을 중심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나누었다. 그중 단독으로 소설을 쓴 예령 작가가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도 위로받고 싶고, 자신의 글이 누군가를 위로하기를 바랐다.

 

SNS를 꾸준히 하는 이유가 시간이 가면서 바뀌어 갔다. 초기에 좋아요수에 취해서 개똥철학을 읊었고, 내가 이런 멋진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내용이 많았다. 강연하거나 어떤 좋은 일이 있거나 하는 조명받는 모습이 많았다. 탄핵되고 교도소에 갔던 두 대통령 시대를 살면서 활동 현장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이 되었다. 무언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열망에 대부분이 비판하는 글이었다. 저격 글도 많았다. 이때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 때의 나는 매번 부딪치고 싸우는 싸움닭 같았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달그락과 길청 활동을 하면서 현장 활동에 대한 고민과 좋은 분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가끔은 비판 글도 올리지만 그때와 전혀 다른 이 되었다. 지나 보니 모두가 내 삶이자 경험이고 부족한 역사다.

 

누구를 평가하고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올리는 글과 사진, 영상 모두가 나에게는 큰 배움이고 인간관계의 끈으로 작용한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요수나 댓글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그저 내 속도와 고민에 따른 글이 자연스러워졌다. 글이 길어도, 짧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반응하며 공감해 주고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극소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매니아적 관계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도 붙였다. 불특정 다수에 의한 위로와 위안, 관심도 좋다. 거기에 이렇게 소수의 관계에서 오는 공감이 더 좋다.

 

책을 몇 권 출간하면서 알게 됐다. 책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이런 삶의 위로나 공감, 정보, 해석, 성찰, 철학과 삶의 경험, 관점을 나누기 위해서인데, 이곳은 책을 살 필요도 없이 매일 나누는 공간이 되니 얼마나 좋은가. 더 많은 이들이 관계하며 공감하면 좋겠지만, 독자가 1명이면 어떻고 100명이면 어떤가? 몇 명의 깊은 공감과 유대면 족하다.

 

기사나 유명인의 글 캡처한 비판 글 한두 개에 수천 개의 좋아요와 100만 명이 왔다 갔다 해도 별 감흥이 없다. ‘좋아요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들이 반응해 주고 공감해 줬는지다. 이곳에서 만나서 더 좋아지는 이들이 있다. 현장이든 어디든 만났거나 관심을 둔 사람들 중에도 있다. 사람들의 혐오나 배타가 아니라 자기 성찰에서 오는 비판, 공감과 환대, 배려, 위로, 다양한 정보와 관점이 넘치는 곳이 되었다.

 

숫자로 인한 어떤 영향력을 얻으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고 공감하고 나누고 싶은 그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해 보인다. 내 앞에 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그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집중해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