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이다. 기일이면 어머니 집에 모여 예배드리고 식사한다.
아이들이 곧 시험 기간이라고 했다. 오전에 할아버지 추도예배로 할머니 집 가는 날이라고 했다. 며칠 전 이야기했다고 하니 시험 기간 이야기가 나온다.
“나 죽은 후에 손자가 내 제삿날에 시험공부 때문에 오기 싫다고 하면 아빤 슬플 것 같아.” 그랬더니 아이가 날 빤히 보더니 “아빵, 나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을 건데.”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나?
예전에 코코라는 영화 보면서 혼자서 엄청 울었더랬다. 누구는 갱년기(?)냐고 놀렸다. 사람이 기억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는 멋진 표현을 하려고 했는데 자기는 아이를 안 낳겠다나?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두 아이 모두 저녁에 아버지 추도예배 참여하고 식사하고 수다까지 떨었다.
식사하고 막내가 갑자기 킥킥거리면서 “아빵, 아침에 예배 인도하고 찬송 목소리 다 들어갔는데 웃겨.”라면서 교회 유튜브 보여준다. 중학생인 막내가 교회 예배 유튜브 엔지니어 역할 한다. 남신도회 주일이어서 예배 사회 봤다.
나는 삼치(?)다. ‘삼체’라는 영화 제목이 아니다. 음치, 몸치, 박치인 세 개의 치(?)를 일컫는다. 합창이든 뭐든 어쩔 수 없이 노래할 때면 마이크 최대한 멀리한다. 오늘도 그런다고 했지만 사회자 마이크만 방송 장비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내 목소리만 영상에 들어 갔다. 교인들 목소리는 없고 나의 음정, 박자 다 틀리는 소리만 영상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들어도 웃겼다.
저녁시간 식사하고 막내가 도서관 가겠다고 해서 태워다 주고 집에 왔다. 시간이 빠르다. 멍하니 있다가 알았다. 내가 지금 큰아이 나이 때에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사업이 망했고, 직장 생활도 어려워진 후 집에서 술만 드시면서 시를 쓴다고 했다. 책도 많이 버렸고 술주정도 자주 했었다.
나의 청소년기 삶이 복잡할 때 아버지 때문에 가정사 어려움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을리 없다. 그럼에도 어머니 헌신과 노력으로 동생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 한 친구는 유학하고 미국 시민권까지 얻어서 살고 있고, 막내도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가정 가꾸며 잘 살아 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구김 없는 밝고 유쾌한 모습도 보기 좋다.

아직도 잘 산다는 게 뭔지 모른다. 그저 나이 듦에 따라 조금은 유연해지는 것만 같다. 큰아이가 자기는 아이 안 낳겠다고 해도, 막내가 아빠 영상 노래 웃기다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을 수 있는 수준은 됐다. 도서관 태워 주면서 막내가 귀에 대고 계속 쫑알 대는 담임 선생님의 뒷담화와 요즘 어려워 하는 친구 관계, 귀멸의 칼날 이야기까지 듣고 맞장구 치는 수준은 되었다.
내 아버지 마지막은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모습으로 각인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분의 피로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 준 작은 생명 하나가 오늘 밤 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해 주었다. 갑자기 막걸리 드시고 시를 읊다가 노래 부르면서 곧 자기 세상이 온다던 아빠가 생각나. 갑자기 보고 싶네.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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