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녹원 안에 거대한 사각 조형물이 있다. 막내가 들어 보라고 해서 슈퍼맨 같은 멋진 포즈를 취했다. 갑자기 카뮈의 시지프스도 생각이 났고, 슈퍼맨도 보였다. 이 거대한 조형물이 정말 무겁다면 어떨까 싶어? 지구는 바닥으로 끌어당기니 내가 조형물 위로 올라가면 전혀 무겁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위치만 바꾸면 전혀 무겁지 않게 된다. 우리네 인생 같아. 내 선자리를 선택하는 일이 삶을 결정해. 진리야.
광복 80주년. 독립운동했던 분들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 평론가들 ‘영웅’ 영화가 신파라고 비판했지만 나는 이 영화 보다가 울고 말았어. 하얼빈도 그랬고.
일제 강점기, 일제에 잡혀 고문당하고, 깨지고 죽어나가면서도 끊임없이 독립을 위해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분들. 이분들이 어떤 큰 승리를 했던 게 아니다. 확실한 희망이 보였던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제에 무자비한 통치 가운데 희망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건 분들이 계속 나왔다. 나는 이분들의 삶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고, 현재 우리 민주주의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와 반대로 너무나도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식민사관에 찌들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촉진했다면서 경제 발전의 바탕이 되어 우리가 일본 때문에 발전해서 좋았다고 주장하며, 무조건 멸공만 외치는 자들.
사람은 선자리가 중요해. 정말 중요하다. 친일사관을 가진 자들의 선자리는 명확해. 그들에게 민족자결권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존엄도, 억압과 불의에 대한 저항과 정의 실현도 없다. 오직 기회주의적인 이기성을 실현하면서 이를 당연시하기 위해서 온갖 정치적 구호를 가져다 붙이고 있다. 친일도 생존 전략이고 당시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까지 설명한다. 그 자들의 선자리가 그곳이고 그곳 때문에 부와 명예를 얻었다면 당연히 독립운동가들과 일제에 저항했던 이들이 좋아 보일 리 없다.
어떠한 이상과 가치, 삶의 긍정적인 가치를 입으로 뱉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 이전에, 내(그)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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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숲을 왜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따라 나섰다. 막내는 다음 주 개학, 큰아이는 이미 개학했다. 오늘이 마지막 휴일이라면서 무조건 어디를 가야 한다고 했다. 여름 휴가도 안 간 부모 덕에 어디라도 가자며 오래전 다녀왔던 담양에 들렀다. 큰아이 먹고 싶다는 떡갈비도 먹고, 대나무숲도 땀 범벅이 되어 걸었다. 돈 쓰고, 땀 흘리고, 피곤하고 살짝 바가지 당한 식당까지 있었지만 원래 ‘쉼’은 그런 거다. 투덜거리는 내 옆에 있는 가족의 밝은 얼굴 보았다. 그런게 휴가다. 몇 달 만에 가족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서 대화하고 투덜거리고 쫑알거리고 웃다가 졸다가 저녁에 ‘킹 오브 킹’이라는 만화영화까지 본 날.
그러다가 늦은 밤 귀가 후 선자리 생각 중. 오늘이 광복 80주년이었고, 대통령 국민임명식이 있는 날이다. 모든 이들이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래. 어떤 이는 감옥에서 잘 있었으면 좋겠어. 대한독립 만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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