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일정 마치고 오후, 잠시 사무실 뒤에 월명산 걸었다. 생각도 많았고 팔도 쑤셨다. 멀리 앞에 두 노인이 걸으면서 큰 소리로 대화하고 계셨다. 두 분 모두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언 듯 본 두 분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는 흥겨웠고 눈빛은 따뜻했다.
이분들처럼 여든 넘어서도 자주 산책하면서 허물 없이 속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가릴 것 없이 앞 뒷담화 다 하는 벗이다. 마시지 않는 술이지만 갑자기 길을 걷다가 경치가 좋아 막걸리 한 두잔 기울이며 따뜻한 햇볕 받으면 그냥 웃을 수 있는 벗이면 족하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 없이 허물없이 늙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늙어 가면서도 청소년, 청년까지 포함해 다양한 세대와 교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관계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만, 수년 전까지 조금 심했다. 홍수와 같은 물을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마실 수 있는 생수가 아닌 홍수일 수도 있겠다는 고민. 그 시간을 넘어선 이후 잘살아 본다는 게 이 수준이다.

나이 먹으면서 관계의 ‘질’과 매 ‘순간 만나는 분들’과의 행복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만난 어르신들과 같이 긴밀한 관계가 될 수 있고, 아주 가끔 스치듯이 만나는 관계도 흥겹고 행복한 관계가 된다. 어제 체육대회 행사 마치고 따뜻한 말 한두 마디 주고받은 교우분들과의 순간이 좋았고, 급하게 택시 탈 일 있어서 잠시나마 기사님과 나눈 대화도 좋았다. 오후에 만난 선생님과의 그 짧은 순간에 삶의 이야기까지 나누고 권면하고 권면 받은 그 순간도 생각이 많아서 좋았다. 막내가 방 노크하고 들어가 잠시 나눈 대화도 좋았다.
이곳 페북이나 블로그 등에서 만나는 분들과의 그 짧은 댓글로 대화하면서도 좋다. ‘좋아요’ 하나에도 가슴 따뜻해지는 경우도 많다. 어르신처럼 끈끈한 우정을 죽을 때까지 쌓아 가려는 노력도 커지고, 지금, 이 순간 만나는 모든 이들과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잘 보듬어 안는 ‘품’이 커지는 게 어쩌면 ‘나이 듦’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휴일이 이렇게 간다. 밤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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