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몇 가지 깨달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얽혀서 관계해야 하는 공간에서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내가 상대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상대가 사람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SNS도 오프라인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에 스레드를 시작했다. 처음 가입했을 때는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글쓰기나 출판업, 리더십과 조직 운영 전문가들과 친구를 맺고 적당히 찾아보는 정도였다. ‘스친’도 300명 내외에서 멈췄다. 자주 들어가지도 않았고, 페북처럼 운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계엄령 이후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쏟아졌고, 나 역시 배출구가 필요해서 스레드를 이용하게 됐다. 정치적인 글이나 정보를 안내했다. 내란이 너무 싫었다. 스트레스도 있었고 집회 몇 번 나가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 알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몇 달 만에 팔로워가 1,600명 가까이 되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친구 맺기도 했고 글을 모두 오픈해 놔서인지 극우·극좌, 진보·보수 등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이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손가락 튕기면서 몸으로 알게 되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할 만한 사람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하며, 비아냥과 조롱만 하는 이들이 있었다. 오프라인에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지만, 이곳은 적나라했다. 상대의 말에 조롱과 비난만 가득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최소한 내 이야기에 반응을 하면서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니 말이다. 계정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게 해 놨다. 이 정도 수준은 양반(?)에 속한다.
산불도 북한군이 냈고, 중공군이 우리 국회를 점령했으며, CIA에 신고하면 사람들이 잡혀간다느니, 민주당은 모두 빨갱이라는 등 황당한 주장도 많았다. 이번 대선도 부정선거라고 확신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유나 근거도 없이 무조건 비난만 퍼붓고, 분노에 찬 이들이 많았다. 거기에 ‘신실한 종교인’이라는 건 덤이다. 이런 분들은 일단 차단이 답이다.
이런 사람들 특징은 거의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람’인지도 다시 살펴야 했다. 계정에는 얼굴도, 이름도 없고, 자기 공간에는 글도 없다. 돌아다니며 같은 말만 반복하며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 이들이다. 무조건 차단해야 한다.
요즘 ‘통합’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그것도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전혀 사용하지 않던 정치인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던 이들 입에서 통합 이야기가 쏟아지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통합은 우리 사회를 위해 누구나 바라는 바다.
오래전, 고(故) 노회찬 의원이 말했다.
“청소는 먼지에 대한 보복이냐? 더러우니까 청소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사회적 통합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문제는 오염물질과 바퀴벌레, 병을 만들어 내는 나쁜 것들을 먼저 소독하고 청소해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마찬가지다. 깨끗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다. 통합은커녕, 병이 퍼져 모두가 산산이 부서지기 쉽다.
SNS가 좋은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때로는 비판과 비평도 오가는 통합적이고 평화로운 관계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한다. 문제는 벌레나 병균, 먼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하는 짓은 오직 생명을 공격하는게 일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병균과 먼지는 차단하거나 쓸어서 버려야 통합이 가능하다.
너무 더러운 곳은, 청소하지 않고 같이 뭉개고 있으면 결국 썩어 없어지기 마련이다.
관계를 맺으며 통합을 이루려면, 내가 상대할 만한 사람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기본이다. 사람이 아닌 경우라면, 즉시 차단하고 격리해야 한다. 건강한 통합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
.
ChatGPT에게 내가 쓴 위에 글을 블로그용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사람인지부터 확인하라 – SNS 시대의 건강한 관계 맺기
요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도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고, 목소리 한 번 듣지 않은 채. SNS라는 이름의 광장, 혹은 전장(戰場)에서 말이지요.
관계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
SNS를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통찰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을 상대할 만한가?”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사람이 정말 사람인가?”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SNS에서는 정말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오프라인 관계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나 정체성이 어느 정도 전제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정, 얼굴도 이름도 없는 존재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됩니다.
스레드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들
작년 하반기, ‘스레드’라는 SNS를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출판, 글쓰기, 조직운영 등 관심 분야의 사람들과 소소하게 관계를 맺으며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계엄령 이후 정치·사회 이슈가 쏟아졌고, 저도 배출구가 필요해 스레드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사이 팔로워는 1,600명에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은 페이스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극우, 극좌, 진보, 보수가 모두 얽혀 있었고, 대화보다는 싸움에 가까운 장면이 더 많았습니다. 처음엔 누구에게나 열어두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대화하려는 건 무모한 일이라는 걸요.
예의가 사라진 공간, 사람 아닌 존재들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비아냥과 조롱만 쏟아내는 계정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산불을 북한군 탓으로 돌리거나, 중공군이 국회를 점령했다고 말하며, CIA에 신고하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근거도 없이 모든 걸 음모론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 아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계정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뚜렷했습니다.
- 얼굴이 없다
- 이름이 없다
- 자신의 공간에 단 한 줄의 생각도 없다
- 돌아다니며 같은 욕설과 비난만 반복한다
이런 계정들은 대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차단이 정답입니다. 대화로는 치유되지 않는 감정과 증오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통합을 말하려면, 청소부터 해야 한다
요즘 '통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불과 몇 달 전까지 혐오와 분열을 부추기던 이들 입에서 ‘통합’을 말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기까지 합니다.
오래전 노회찬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는 먼지에 대한 보복이냐? 더러우니까 청소하는 거 아니에요?”
정확한 말입니다.
진정한 통합은 청소 이후에야 가능합니다.
바퀴벌레를 방치한 채 통합을 말하는 것은, 결국 더 큰 병을 부르는 일일 뿐입니다.
관계의 시작은 '판별'에서부터
SNS가 울고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비판과 성찰이 오가는 공간이 되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사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문제는, 벌레나 병균, 먼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는 해악은, 반드시 차단하고 격리해야 합니다.
청소하지 않고 방치된 더러움은 결국 모두를 썩게 만듭니다. 건강한 관계, 건강한 사회, 건강한 통합은 깨끗한 환경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관계를 맺기 전에 먼저 확인하십시오.
- 나는 이 사람을 상대할 만한가?
- 이 사람은 정말 사람인가?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바로 차단하십시오. 건강한 통합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연구 및 관점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기 자리에 맞는 옷을 입는 겸손,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20) | 2025.06.16 |
|---|---|
| 하버드, UCLA, 그리고 거짓말: 왜 우리는 속았는가? (18) | 2025.06.09 |
| 선거의 이유_"제발!! 부탁이야. 투표해.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투표해 줘" (15) | 2025.06.03 |
| 이준석은 작은 윤석열일까? (13) | 2025.05.28 |
| 사회적 분노를 이기는 방법 (24) | 202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