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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삶의 꽃을 피우는 방법

by 달그락달그락 2024. 11. 24.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이호우 님의 시조 개화(開花)’.

 

마지막 꽃잎이 열리는 순간이 눈에 그려진다.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는 한순간, 시인도 아려서 눈을 감는 그 짧은 시간.

 

예수께서 길을 떠나는데, 한 청년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계명을 알고 있느냐 물으니, 청년은 어려서부터 모두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십계명을 모두 지키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예수께서 청년을 사랑스럽게 여겼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는데,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자 청년은 울상을 짓고, 근심하며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목사님이 청년이 떠나기 전 그 순간을 개화라는 이 시조를 읽어 주며 꽃잎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비유했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에게 꽃이 피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의 결정이 인생 전체를 결정하기도 한다.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그 선순환의 때에 어느 순간 꽃을 피우지 못하고 감추어진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청년이 꽃을 피우지 못한 이유는 라는 자기중심적 태도 때문은 아닌지. 청년은 돈이 많았다. 꽃잎을 붙잡고 있는 무게가 거기에 있었다. 나를 지킨다고 여기는 돈과 권력에 따른 내적 평안함은 내가 아는 신앙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꽃이 피지 못하게 잡아당기는 역할을 한다.

 

늦은 오후 월명산 산책했다. 가끔 보는 조각 공원에 작품들(사진) 보다가 이런 거나 생각하고. 가을 끝을 꼭 붙잡고 있는 날.

 

마지막 순간에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청년의 돈과 견주어 보니 많은 게 보인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일하는 이가 있다. 인정 없으면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타자와 끊임없이 비교한다. 학벌이 돈인 경우가 있다. 자기 학벌 때문에 죽을 때까지 콤플렉스로 남아서 꽃 피우는 일을 더디 한다. 자기주장에 갇혀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않는다. 그 주장과 이기심이 청년의 돈이 된다.

 

꽃을 피우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그 순간이 나를 발목 잡는 청년의 돈과 같은 것을 넘어설 방법()은 무얼까? 반복해서 시도해 보는 노력은 아닌지. 그 순간 결단하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삶의 이유나 가치를 조금씩 깨닫고 다시 내려놓을 수 있는 말이다.

 

살다가 한 번에 꽃을 피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율법을 모두 지킨 부자 청년이 나는 다시 노력했을 거라고 여긴다. 처음부터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는 못해도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조금씩 나누어 주고 결국에는 그분의 뒤를 따라 갔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꽃을 피우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 꽃을 피우기까지 치열하게 생명을 살리며 견뎌왔던 뿌리와 줄기, 잎을 통해 나온 꽃의 모습은 흡사 우리네 인생사와 같다.

 

마지막 꽃잎이 피려고 하는 그 순간, 신도 숨죽여 기다릴 것만 같은 그 순간이 있기까지 작디작은 씨앗 하나가 숨겨진 때를 기억한다. 이후 비바람과 번개, 환경오염까지 견디며 만들어진 과정에서 오는 그 마지막 꽃잎. 우리는 그 순간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꽃이 만개하려면 결국 지금, 이 순간에 비바람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하고, 벌레와 잡초와 싸워야 하고 적절한 비료도 넣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마지막에 절정의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