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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삶으로 살아 내는 예배가 가능할까?

by 달그락달그락 2024. 7. 14.

 

예배는 형식이 아니고 삶이라고 했다. 우물가에 힘겨워하는 여성에게 의식이나 절차(Rituial)가 아니고 진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까지 설명해 줬다. 형식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을 넘어선 이야기도 자주 했다. 아예 성전이 무너진다고까지 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2천 년 전에 말씀했는데 이전 나는 건물이 교회인 줄 알았다. 돈 많이 모아서 큰 건물 짓고 사람들 많이 모아 놓으면 부흥이라고 믿게 한 사람들을 만났었다.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에 십자가만 서 있는 교회. 어떻게든지 그 건물에 사람들을 데려다가 놓는 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다. 오래전이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내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창피한지 모른다.

 

삶으로 살아 낸다는 것은 가정과 직장, 지역, 지구촌 등의 공간에서의 사람살이에 있었다. 그곳에서 실천적인 삶이 예배였다. 문제는 이 일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내가 가진 신앙을 삶으로써 살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타자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데 가능한가? 세상에서도 가장 낮고 약한 곳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라고 하는데 가능한 일이냐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보다도 사회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니 직장이나 사회에서 본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도 어폐가 있다. 교회공동체에서의 작은 봉사도 선교도 구제도 하지 않으면서 삶으로서 살아 낼 수 있다고? 나는 거짓에 가깝다고 여긴다. 교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봉사나 사명도 없이 삶으로서 살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어떤 존재를 믿고 삶으로 살아 내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모인 공동체가 유지되고 운영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돕고 함께 해야 한다. 기반이 그 자리이기 때문이다.

 

삶의 기반이고 바탕인 공동체와 가족, 지역과 이웃, 운영하는 기관과 만나는 수많은 이들과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 안을 깊이 보면 볼수록 가슴이 아린 건 내 부족함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