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인데 고3처럼 사는 아이가 이주 전 남자친구 생겼다. 일주에 두세 번은 늦은 밤에 책 좀 그만 보고 빨리 자라고 소리쳤었는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12시가 되면 방문을 닫고 통화하면서 “꺄르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1시 정도 잠드는 것 같다.
“넌 좋겠다. 남자 친구도 생기고 연애도 하고. 아빤 그런 거 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됐는뎅” 이 한마디 했다가 굶어(맞아) 죽을 뻔했다.
하루를 살았다. 오전에 회의를 했고, 결제도 했고, 통화도 했으며, 대화도 했다. 문제가 있는 어떤 일 때문에 고민도 했으며, 내일 있을 일정 준비도 했다. 조만간 연구소에서 진행할 수 있는 일을 또 하나 기획했다. 선생님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매번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최근 아는 분들 중 아픈 분이 있고 사랑하는 이가 아파서 힘겨워하는 분도 있다. 삶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날이다. 잘 사는 게 뭘까? 정말 잘 산다는 것. 욕구, 욕망... 그 모든 것을 취하면 행복해진다는 이들이 있다. 반면 그 욕망의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행복해진다는 이들도 있다. 뭐가 맞는지 모른다.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지겹게 했고, 지겹게 들었지만, 오늘 하루만 돌아봐도 잘 살았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위해 사는 일이 있기는 한 건가?
이런 생각 하는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병마와 싸우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술을 마시고 있다. 티브이를 보면서 키득거리기도 하고, 친구와 대화 중이며, 책을 읽기도 하고 잠을 청하기도 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가 아파서 삶의 모든 것을 중단하고 병실 한 귀퉁이에서 아이가 낫기만을 기도하는 부모도 있고, 자신의 병 때문에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모든 시간은 불평등하지만, 한 편에서는 평등하다. 자기 시간의 길이와 질의 차이도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기다리는 죽음이 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이 모습이 어떨 때는 루쉰이 말한 ‘정신승리’에 취해 있는 사람 같다. 요즘 내가 그렇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루를 빠르게 살아 내는 그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 복이 되는 일이라는 확신은 있다. 모두가 그 순간을 다르게 살아가지만, 그 모든 이들의 삶이 의미가 있음도 안다. 매번 문제는 나다.
딸아이의 첫사랑이 망할 것으로 예측한다. 첫사랑에 성공했다는 것은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통화하면서 계속 웃는 아이가 가지고 있을 설렘과 흥분, 기분 좋음은 충분히 누리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잘 산다는 게 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그 순간에 찾아온 행복은 꼭 붙잡아야 한다는 것. 반면에 행복과 함께 꼭 찾아오는 아픔이나 불행을 반드시 견뎌내야 한다는 것. 어떤 순간이든 떠날 것이고 다시 오겠지만 그때 어떻게 살아 냈는지가 정말로 소중해진다는 것.
오늘 하루 종일의 삶 가운데 나에게 지금, 이 글을 끄적이는 이 순간도 그런 시간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도 그 어떤 대가나 책임이 아닌, 그냥 해야 하고 싶어서 끄적이는 글이다. 나와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읽어 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친구라는 징표는 이런 게 아닌지.
잘 삽시다. 당신도 나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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