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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동지를 얻었습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4. 4. 20.

동지를 얻었습니다.”

 

차에 내리면서 김 대표님 인사에 심쿵(?)했다. 어제 점심 세종에 기업컨설팅 및 AI 관련 회사 운영하는 김 대표님과 익산에서 처음 만나서 식사하며 두 시간여 깊은 이야기 나누었다. 군산에서 미팅 있다고 해서 내 차로 이동 중에 삶과 우리가 꿈꾸는 비전에 관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람들 많이 만나는데 처음 만나도 속 이야기 나누면서 금세 친해지는 사람이 있다. 결이 같아서다. 어제 대표님은 후원자로 만났다. 이후 활동 어떻게 함께 할지 나누었다.

 

공학, 경영 등 영역이 달라서 AI나 네트워크 등 이루는 방법은 달라도 삶과 꿈꾸는 지역에 마을공동체 등의 모습이 비슷한 사람들 만나면 가슴이 설렌다. 이분 내리면서 동지를 얻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지어떠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본래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단어로, 혁명을 함께하던 이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이다. 나에게 혁명은 아니어도 꿈꾸는 사회가 비슷한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동지가 되었다.

 

내가 동지라고 여기는 이들과 꿈꾸는 사회는 소유보다는 관계지향적인 공동체적인 공간을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는 이들이다.

 

어제 이 땅을 떠난 홍세화 선생님이 한겨레에 쓴 마지막 칼럼에 이 구절.

 

끝내 냉소와 좌절을 멀리하라고 나 자신에게 지운 다짐은 안간힘으로 어쭙잖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빌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어설픈 말을 마지막 한겨레 칼럼에 쓰게 한다.”

 

입진보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존경 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말이 아닌 행함으로 삶으로서 보여지지 않으면 그 무엇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홍선생님이 사후에 더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분의 삶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의 성숙한 시민은 결국 행함에 있다. 근본은 지식이나 물질 자랑도 아니고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입으로만 떠드는 신앙심도 아니다. ‘행함으로서의 에 있다. 삶으로서 움직임의 동력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겸손이 바탕이다. 성숙은 겸손과 이상에 대한 행함이 근본이라는 말이다.

 

내가 사는 동안 꿈꾸는 사회, 어떠한 이상향이 완전히 이루어질 거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저 인간다운 삶의 과정이라고 믿고 움직일 뿐이다. 어디에서건 그 꿈을 나누고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주일을 조금은 급하게 살았다. 돌아보니 오늘이다. 저녁에도 짧은 일정이 있지만 계속해서 동지를 만난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다.

 

익산에서 미팅 마친 후, 청소년자치공간 다꿈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