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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행복해지는 방법; 우리의 전쟁에서 즐겁게 살아남는 법

by 달그락달그락 2024. 3. 23.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미친놈처럼 일해야 한다. 정말 미친 듯이. 불행은 견뎌야 산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과 같이 발버둥 쳐야 성공 근처에라도 가는 세상이 되었다. 부모가 건물주나 장관, 국회의원, 재벌이 아니라면 말이다.

 

졸업 후 연봉이 가장 높은 서울대 3대 학과가 어딜까? 의대나 법대가 아닌 세 학과 모두 인문학 관련학과라면서 이를 근거로 방시혁(미학)과 이재용(동양사학), 정용진(서양사학)을 거론한다. 웃자고 하는 소린 줄 알겠다만 생각이 많아진다. 이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엄청난 성공을 했다. , 정 두 분은 재벌의 자녀들이고 방시혁 대표만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셨던 부친이 있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연봉과 명예, 권력, 워라벨 등이 성공이라면 행복과 이미 다른 영역이다. <성공==권력=명예=워라벨 등>의 등식이 맞는다면 말이다. 성공과 행복은 같을 수도 없고 등치 시킬 수도 없다. 성공했는데 행복할 수도 있지만, 불행이 커져 극단적 선택을 하는 예도 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나 명예, 권력에서도 별로인 사람의 행복지수가 매우 높기도 하다. 성공과 행복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나이는 45, 행복한 나이는 80세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삶에 대한 만족감이 25세부터 점차 하락해 45세 즈음에 최저점을 찍고 50대부터 다시 높아지는 ‘U자 곡선을 주장하는 연구.

 

경제학자 베르트 판 란데흐험은 연구를 통해 연령별로 직면하는 환경적 특징을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20대는 삶에 대한 근심·걱정이 비교적 적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만, 중년으로 접어들면 책임이 늘어나면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여기서 중년층이 느끼는 불행의 정도가 실직하거나 가족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다 50대가 되면 인생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면서 만족감을 되찾게 된다. 20대와는 다른 자신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구 유럽 중심의 연구인데 이를 우리나라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내 보기에 웃기는 소리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삶의 질(행복지수)OECD 국가에서 거의 꼴찌고, 20대 삶은 경쟁에 치여 대부분 비정규직에 놓여 있다. 20대가 60대보다도 섹스리스가 더 많은 나라다. 연구 결과에 비교하면 노인들의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아져야 하는데 최근 5년여 2만여 명 내외의 노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노인 불행 또한 극단적이다.

 

우리나라는 전쟁 중이다. 무슨 말이냐고?

 

전 세계에서 출산율 0.7명대는 두 나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 2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출산율이 같다. 우리나라의 저출생 원인도 전쟁이다. 전쟁 내용도 오랜 시간 비슷해 보인다. 입시전쟁, 사교육 전쟁, 육아 전쟁, 취업 전쟁, 일자리 전쟁, 주거 전쟁, 정치전쟁, 이념전쟁, 거기에 요즘은 건국 전쟁(?)까지 불붙었다.

 

우리 삶의 모든 용어 뒤에 전쟁이 붙어도 자연스러운 나라다. 전쟁은 계속해서 확전 분위기다. 성공만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결과물이다.

 

행복은 좋은 감정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내가 원하는 어떤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며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있는 어떤 상태를 뜻한다. 바꾸어 보니 불행은 불안하고 내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기는커녕 바닥이고 삶의 틈이 없이 정신이 없는 어떤 상태다.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하는 것, 어떤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취하는 행위 과정이 행복의 감정이 쌓인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과 관계없는 시민사회단체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기관들이 있는데 이들은 마냥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그 안에서 치열함으로 불행이라는 심리적 감정에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감정, 평화로운 사회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공보다는 삶의 질(행복)’에 집중해야 옳다. 전쟁통(?)에 방법이 있냐고? 모르겠다. 나 또한 매번 행복과 불행을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살다 보니 공부하고 경험하면서 한두 가지는 깨달았다.

 

일단은 경쟁에 저항해야 한다. 경쟁은 불행을 만드는 씨앗이며 바탕이다. 누구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행위 자체, 타자와 비교가 이루어지는 순간 불행은 싹튼다. 경쟁하지 말고 나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겠다.

 

둘째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몰입하는 순간 가장 큰 행복 신경전달 물질이 쏟아진다. 인간의 뇌는 그렇게 구성되었다. 2, 30분 지난 것 같은데 반나절이 훅 지나가는 일을 할 때의 그 기분은 쾌락과는 다른 행복감이다. 내 직장이나 공동체에 본질인 비전을 중심에 두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행복은 시작된다. 몰입은 행복의 정점일 수 있다.

 

셋째,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집중하는 게 좋다. 인간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 타자에 대한 비난을 내려놓고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사회)를 고려하는 일이 우선이다.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 살이, 사람 관계를 중시한다. 내가 현재 함께 하는 이들과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대화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 내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를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일이다. 워라벨과 같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전제부터 틀렸다. 일도 내 삶이다. 본질은 일은 힘들고 불행해도 좋은 게 아닌 그 일 안에서의 삶도 중요한 과정이다. 워라벨 한다면서 직장에서의 생활 적당히 하고 퇴근 후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한 두 잔과 일 년에 몇 번 가는 여행이 삶의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직장 관계는 선을 긋고 인간관계 넘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한편은 맞고 한편은 틀렸다. 나쁜 놈은 선을 그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해야 건강해진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간관계는 기본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직장 생활이 우리 삶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삶을 놓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 어디에 있건 지금 내가 행하는 일에 몰입이 가능한 일인가? 이 일이 나와 타자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일인가? 나는 불안한가? 평안한가? 이 순간을 돌아볼 일이다.

 

세상의 이상을 찾아간다면서 현재의 삶을 놔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상은 어떤 사회적 가치와 역사, 철학적 고귀한 목적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돈이나 명예일 수도 있다. 내용은 달라서 보는 사람들이 다르게 읽힐 수 있지만, 그 내면의 감정의 문제에서 현재의 행복을 선택하지 않을 때 자칫 내면이 비슷한 불행의 괴물을 껴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 어떤 삶을 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지 말자.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에 삶이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이 순간이 내 평생이기 때문이라는 것. 절대로 잊지 말기를.

 

일단, 이런 글 끄적이는 나부터 잘 살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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