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돈이 없었다. 가끔 알바 했지만 호주머니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당시에도 대화하며 분위기 살리고 장난치는 재주가 있어서인지 선후배들 술자리, 갑작스런 미팅 자리 등 여러 곳에 자주 불려 나갔다.
술에 빠져 살던 때여서 그런 자리 좋아했다. 외로움 달래며 세상이 왜 이런지 개똥철학 들어 줄 새로운 동성, 이성 친구들까지 있었으니,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공간이었다.
어느 날인가 친구가 소개팅이라면서 나가 보라고 했다. 이쁜(?) 친구라면서 꼭 만나 보라고 했다. 왜 나를 안내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 오후 4시 언저리에 만나자고 했고 카페가 아닌 호프집 비슷한 술집이 장소였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짧은 미니스커트에 살짝 한 화장이 매력적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갑작스레 내가 지금 와 있는 곳이 미팅이나 어떤 모임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최소한 술은 못 사더라도 차라도 한잔 사야 하는데 호주머니 든 돈이 몇천 원 없었다. 집에 갈 차비라도 되려나?
한참 대화 이어가다가 내가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친구 그 소리 듣더니 미소 짓더니 괜찮다고 오늘은 자기가 모두 사겠다면서 술도 밥도 샀다. 그날도 살짝 취했고 즐겁게 대화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이후로 만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그 친구 전화도 삐삐도 피했다. 그냥 만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늘은 쉬는 월요일이다. 대학에서 강의한다. 오후 강의 마치면, 대학원 강의까지 두 시간여 시간이 빈다. 매주 가는 카페에서 노트북 켜고 할 일 하는 게 루틴이다. 오늘은 자주 주문하는 샌드위치와 빵이 안 보인다. 모두 팔린 모양이다. 레몬차만 주문했다.
벨이 울려 주문한 차를 찾으러 갔는데 차 내어 주는 분이 선물이라면서 꽤 비싼 샌드위치를 주셨다. 뒤에 사장님인지 지배인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계셨던 남성분이 방긋 웃어 준다. 자주 오셔서 선물이라면서 내어 주었다. 샌드위치가 고마웠고 나를 알아봐 주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이전에도 남은 빵이라면서 싸 주던 분이다.
지금에 나는 20대의 나와는 주머니 차이가 완전히 달라졌다. 카드도 몇 장 있고 은행 잔고도 조금 있고 대출받은 것도 넉넉(?)히 있다. 밥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선후배들 밥이나 술도 가끔 살 정도가 되고, 후원하는 곳도 꽤 된다.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다.
20대에 삶과 지금의 삶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오늘 카페에서 고맙다고 선물해 준 7, 8천원 하는 샌드위치 하나 보면서 갑자기 20대에 소개팅 했던 그녀가 떠 올랐다. 아름다웠고 유쾌한 친구였는데 왜 안 만났을까? 첫 만남에서 얻어먹은 게 괜히 쪽팔려서 그랬나? 모르겠다. 그때 내 속마음이 어떤지는 지금도 모른다.
20대 청년의 때는 모든 게 힘들었다. 내 삶도 고달팠고 정치 사회적으로 불만도 많았던 때다. 미래도 너무 복잡하고 불투명하던 때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많이 안정되어 있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은 그 당시보다 10배 이상은 늘어났고, 만나는 사람들도 그만큼 비례해서 많아졌다. 20대에 비해 현재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불안정하지만 ‘안정적’이다.
실제 살아 내는 삶은 불안정해야 하는데 왜 ‘안정적’이 되었을까? 청년기에 비해 현재 내 삶을 거의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다. 20대 그녀에게 맥주 얻어 마시고 알딸딸하게 취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친구였는데 내가 나에게 무언가 불만족했다. 그녀와 수평적 관계에서 주도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 내 옹졸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던 내 초라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안정이란? 주도적 힘과 닮았다. 내 삶을 안정적으로 한다는 것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조용한 바닷물결을 항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험한 파도가 와도 그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힘이 있을 때 안정적이 된다. 환경에 휘둘리면서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기역량이 있을 때 안정성이 커진다. 그 기반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더욱 더 안정성은 커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알아 가는 것이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은 내가 나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20대의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던 때다. 생각만 많고 책에 눌려 살면서 머리만 키우던 때였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머리가 커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이 노래 가사가 정답이다. 나를 알아가는 삶의 과정이 안정을 키운다. 여러 힘겨운 일들 풍파가 와도 주도적으로 헤쳐 나갈 힘이 생긴다. 안정적으로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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