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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감사해서 짓는 죄가 있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3. 11. 19.

감사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주어진 것 중에 감사할 것을 찾으려고도 했다. 노력해서 얻지 못해도 과정에서 감사함은 언제나 있었다. 그 모든 감사를 돌아보니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 배우고, 얻고, 나누고, 깨닫는 등의 수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한 나의 감사함 때문에 누군가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박노해 시인이 쓴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죄>. 오늘 추수감사절 담임목사님이 안내해 준 시다. 눈물이 터졌다.

 

박 시인은 노동운동가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란 문구에서 앞 글자를 따서 필명을 지었다. 전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평화운동가로 시인으로 사진작가로의 삶을 산다. 이분의 아내 또한 약사이면서도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했다. 두 분 모두 청년기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친형은 신부가 되었고, 여동생은 수녀가 된다.

 

박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되신 후 막노동 판을 전전하면서 자녀를 키운 모양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엄혹하고 모진 세월을 살아 내면서도 매일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사신 박 시인의 어머니. 큰아들과 막내딸은 신부와 수녀가 되고, 둘째 아들은 사형선고까지 받을 정도로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며느리 또한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했다. 그러한 자녀들의 삶을 감사함을 받는다. 이 시에 그분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

 

이러한 삶을 사신 팔순 노모가 기도하며 그 감사함이 죄라면서 고백하는 글. 감사한 죄가 너무 슬펐다. 잘 살았다며 존경받아도 될 분인데 그 감사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회개하며 고백하는 박 시인의 어머니. 슬펐다.

 

"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

 

삶이 감사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감사할 것을 찾아야 했다.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감사함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아픔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나?

 

오후에 찬양곡 <감사>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오늘 숨을 쉬는 것도 감사, 내 뜻대로 안 되도 감사, 내게 주신 것 가져가심도 감사, 고난을 주어서 그 뜻을 알게 해 주어 감사.”

 

 

 

 

삶의 고통까지도 감사라는 손경민 선생님의 글과 노래.

 

이 노래를 지을 때 자신도 아파서 수술해야 했고, 아내도 산후조리도 못 한 상태에서 아이가 수술해야 해서 병간호 시작했으며, 남은 두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어머님도 다리 수술해야 할 때 쓴 곡이라고 했다. 택시 타고 가다가 듣게 된 자신의 노래에 회개하며 쓰게 된 감사라는 이 노래.

 

회개하고 기도하며 감사했지만, 이분의 삶은 전혀 나아진 게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변한 게 하나 있었다. 가슴 안의 평화였다.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가슴 안에 감사함이 넘쳤다는 이야기.

 

예배드리면서 감사라는 단어가 나의 이기적인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뿐만 아니라 연결된 모든 이들이, 모든 생명이 감사할 수 있는 감사.

 

슬픈데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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