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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안절부절못하는게 죄라고요?

by 달그락달그락 2023. 10. 30.

안절부절못할 때가 잦았다. 오래전이지만 초창기 청소년활동 할 때 많은 일에 치여서 대부분의 일을 급하게 처리하던 때, 멀리까지 보지 못하고 만들어 놓은 눈앞에 일을 쳐내듯이 진행했다. 지금 프로그램이나 교육하면서도 다음에 진행되는 일이 머리에 돌아다녀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항시 누군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꿈도 쫓기는 꿈을 꿀 정도였다.

 

많은 일을 하면 좋은 것으로 알았다. 청소년을 위한 더 많은 활동, 더 많은 교육, 더 많은 연대를 하면서 어떤 변화를 그렸고, 최선을 다하면서 치열하게 사는 것이 나름의 운동성을 발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하면서 몰고 가기 바빴다.

 

매일 지킬 수 없는 일정을 무수히 만들어 놓고 그것을 모두 처리하지 못하면 내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는 했다. 강박과 불안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었다.

 

엉뚱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안절부절못하고 조급함 내는 짓을 죄로 치부하더라(오늘 목사님이 전해 주신 사울에 대한 말씀 듣고 알았다). 겸손하지 못한 내 모습도 보였다. 모든 일을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혹사하며 헌신으로 포장하는 것은 교만이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늘어놓고서 하는 일은 본질도 목적도 기대만큼 취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집중해야 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일은 대부분 욕심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에 몰입해야 옳다. 사람도 일도, 책도 그 어떤 대상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가면서 죽을 때까지 그 어떤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이상과 가치, 철학에 따라 만들어 가는 일에 따라서 현재 지금의 시간, 지금의 내 앞에 사람과 일을 몰입해야 옳다.

 

일이든 사람이든 늘어놓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만 부리는 나쁜 짓이다. 자신은 많은 일을 하면 훌륭한 사람인 줄 착각한다. 교만이다.

 

사울이 통치하고 42년이 지났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칼과 창을 왕과 왕자만 차고 있고 백성들은 농기구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놓고, 일을 많이 했다면서 지금 자기 앞에 만들어진 일 또한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자기 살기 위해서 개인이 하지 말아야 할 신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했다. 선지자가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음에도 무조건 진행하는 일을 사울만 행할까?

 

▲미국 화가 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 1738-1815)의 ‘사울을 책망하는 사무엘(Saul Reproved by Samuel, 1798)’

 

40여 년간 왕으로서 삶을 살아 내면서 백성들에게 존경받을 때가 있었다. 겸손히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 신에게 맞추어진 본질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때다. 시간이 가면서 교만과 불안이 찌든 삶이 되어버린 사울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다.

 

변명은 반드시 내가 아닌 타자를 대신해서 문제 삼는 행위가 된다. 겸손하지 못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게 변명이다. 제사 드리면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적을 방어할 만한 차분한 노력을 그동안 기울이지 않았다. 사무엘 제사장을 만나서 계속 변명하기 급급하다. 사울의 집권 40여 년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대장장이가 한 명도 없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모든 군인의 손에는 칼도 창도 없었다. 오직 사울왕과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다.

 

사무엘에게 결별 당한 후 사울은 심리적 불안 상태에 빠진 데다가 다음 왕이 되기로 예정된 다윗의 활약으로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열등감과 질투심이 폭발한 사울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몇천 년 전 사울이 갖게 된 불안과 열등감과 질투심에 대해서 현재 우리 정치사회까지 넓혀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요즘 중앙(?) 정치인 중 힘을 과시하면서 움직이는 자들의 불안과 열등감은 나만 보일까?

 

우리네 삶은 또 어떤가?

 

나는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그 어떤 이상과 철학을 추구하는가? 행하는 일,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는가? 삶의 이상 실현을 위해서 겸손히 공부하고 배우고 있는가? 이상향에 대해 그림 그리는 삶과 공동체를 위해서 칼과 창, 방패를 준비하고 있는가? 어떠한 활동이든 개인적 이기성을 발현시키는 게 아닌 그 일의 목적과 가치에 집중하면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행하는가? 안절부절못할 때는 언제고 왜 그런 일을 만들어 내는가? 열등감, 질투심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지역도 정치도 사회도 내가 살아 내는 이곳의 삶까지 생각할 지점이 많을 때다. 사울이 그랬고, 다윗이 그렇게 살다 갔다. 그리고 솔로몬 이후 나라가 어찌 되었는지. 내 삶도 봐야 할 게 많아 보이고, 우리의 정치사회 권력자들의 삶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하늘 보니 가을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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