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새길

선민의식과 사이비종교의 관계

by 달그락달그락 2023. 9. 10.

기독교인 중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없다. 단언한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했으며 우상을 만들지 말라 했다. 이미 돈과 명예, 이성과 사랑 등 다른 신을 너무 많이 섬겨왔다. 부모 공경, 살인, 간음, 거짓 증거, 탐욕 등 나를 보더라도 그 무엇 하나 완벽하게 지켜낸 게 없다.

 

어떻게 단언하냐고? 예를 들면 십계명에서 간음은 실제 강간이나 성매매 등 실제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타자에 대해 어떤 음란한 생각만 해도 간음이라고 했다. 야동 보거나 다른 사람을 보고 이상한 생각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모두 간음한 자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고 우기는 자들이 있는데 그 말 자체가 거짓이 된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율법을 지킬 수 없음에 내가 죄인이다라는 것을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신약에 예수님의 삶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관점으로 삶을 살아 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오늘 80대 중반의 원로 목사이신 김 목사님 마지막 설교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를 중심으로 신약의 틀을 가지고 구약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유대교와 기독교, 기독교와 다른 유사 종교와의 다른 점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안내해 주셨다. 바리새파에 있다가 예수님 알고 기독교인 된 유대인 중 갑자기 안디옥에서 이방 사람들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갈등(. 15)이 생겼다.

 

유대인의 할례(포경수술)는 종교적(유대교)인 율법 중 하나로 유대교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매일 기억하는 과정으로도 여긴다.

 

수많은 토론 끝에 베드로가 말했다.

 

신께서는 우리(유대인?)와 그들(이방인?, )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이 멋진 표현 하나로 유대교나 그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해졌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다.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과 포용의 종교가 내가 아는 기독교다.

 

이단이라고 하는 기독교를 표방하면서 사람을 착취하는 이상한 유사 종교를 자세히 보면 선민의식에 찌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신에게 선택되어 타 집단보다 더 우월하거나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선민의식은 당연히 어떠한 행위로서 나타난다.

 

사람 수를 정해 놓고 그들이 말하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교주가 정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많이 모아 오고, 돈 많이 내고, 목사(?)가 연결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등 교주가 시키는 일을 잘하게 되면 우월한 사람이 된다. 다단계 업자와 닮았다. 등급이 높이 올라갈수록 무언가 더 많은 혜택이 있다.

 

극우로 치닫는 신앙관을 가진 이들이 그들만의 희한한 율법을 강조하면서 교인을 옥죄며 수탈하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 안에 대부분이 이상한 선민의식이 있는데, 이를 붙잡고 죽음 이후 영생만을 갈구하며 이 땅의 삶을 다른 차원으로 넘겨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교주 역할을 하는 중심에 선 목사가 타자를 혐오하면 함께 증오에 가까운 혐오를 내뱉는다. 종교가 다르다고, 소수자라고, 나와 다른 정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정당이 달라서, 신념, 이념이 다르다고 악마 보듯이 혐오하며 증오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이용해 돈을 모으고 정치인들과 결탁해서 유명세를 키우는 이들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랑과 포용의 종교가 우리 사회에 갈등과 혐오를 생산하는 종교로 비추어지는지 일들이 자주 언론에 등장한다. 이단, 삼단 하는 종교도 모두 기독교의 이름을 표방하고 있고, 극우 정치의 가장 앞에선 종교인들 또한 기독교를 표방한 목사들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간 선민의식은 이전에 기독교가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근본을 역행한다.

 

더군다나 유대인이 갖고 있는 구약의 선민의식은 이스라엘 민족이 무엇을 잘해서 신에게 선택받은 게 아니었다. 신은 말한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지만 너희를 선택했노라고. 그들이 받은 선택은 어떤 권리가 아닌 신의 호의라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셈이다.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구별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단순해 보인다. 베드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돈을 얼마만큼 내고, 더 많은 시간을 교회 건물에 충성하고, 많은 사람을 모아 오면, 누군가의 말에 무조건 충성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큰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교인 간 경쟁시키면서 다단계 사업하듯이 위로 올라갈수록 더 큰 우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선민의식을 강하게 집어넣는 자들.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기독교가 은혜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구원이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선민의식이나 그 어떤 우월성을 가지는 것 자체가 더 큰 탐욕을 만들어 내는 악이 되어 버린다.

 

그러기에 더욱 납작 엎드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겸손하게 더 낮고 좁은 길과 문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야 한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피면서 가능한 조금이라도 닮기를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하고 소수자라고 여겼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먹고 마셨던 활동, 정치적으로는 권력자들에게 욕까지 해 가면서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삶. 그것도 너무나 자유롭게 말이다. 우리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셨는데.

 

내 안을 보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