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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교회 건물에 앉아 있는 청소년 숫자가 복음의 결과인가?

by 달그락달그락 2023. 5. 13.

명동성당 앞

 

가톨릭교회에서 청소년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에 위기감을 가지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청소년사목위원회가 구성되어 수년간 과학적 연구와 신학적, 역사적 논증을 거쳐 9년여간의 노력한 결과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2021년 발간한다. 이는 청소년사목이 지닌 그동안의 문제점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여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지난 429일 명동성당에서 이 지침서를 중심으로 오전 930분터 청소년사목을 위한 학술 심포지옴이 진행되고 있다. “지쳐 가는 청소년 사목의 EXODUS!!”가 제목이다. 작년 12월에 관련 신부님 요청으로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고 사목지침서와 청소년사목에 대한 논문과 발표글을 살필 수 있었다. 참여자 분들 모두가 가톨릭 신부님과 서강대, 가톨릭대 등 관련학교 교수님과 관련 연구자 들이다. 개신교인은 나만 있는 듯.

 

이진옥 박사님의 복음화의 주체로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청소년발제문을 읽고 토론문을 작성하다가 어떠한 대안과 논증보다는 내 안에 질문이 많아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옅볼 수 있었고 신학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발제글 중 내 관점에서 주요한 내용을 발췌했고 그 안에 몇 가지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내가 가톨릭 교회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개신교회에 청소년사역의 고민과 대안을 정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마지막에 지역사회 중심의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과 같은 지역사회에 이웃이 함께 하면서 지원하는 청소년공동체를 가톨릭교회가 전국에 만들어서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안전한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랬고 제안 드렸다. 그 곳에서이 신앙적으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사회참여하면서 자신의 건강한 진로를 선택하도록 돕는 곳. 이 청소년 공동체를 지역시민들이 함께 해 주는 곳이다.

 

관련해서 던진 질문에 따른 내 안의 답이 있었다. 세부 내용은 이 곳 상황상 생략하고 질문만 몇 개 안내한다. 내 주변에 청소년, 청년 사역을 위해 노력하는 종교인들이 의외로 많아서다. 팁이 되면 좋겠다.

 

1. 신이 부여한 인간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자기 결정권이다. 참여다.

 

2. 교회에 청소년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교회(건물)에 청소년을 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교회 즉 청소년사목의 이유 중 하나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소년에게 삶에 구경꾼이 되기보다는 자기 삶에 직접 참여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요청하였다?.” 이 말씀 멋졌다.

 

4. 청소년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학교와 학원 등 입시 공부 때문인가?

비겁한 변명이다. 청소년 중 성적이 상위권이어도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며, 이성 교제도 하고, 친구들과 운동도 한다. 심지어 하루에 한 두 시간은 게임도 하고 스마트폰 활용과 SNS는 하루 두 시간 내외는 기본이다.

 

5. 사목지침서에 청소년을 복음화의 주체로 명시한 일은 대단한 일이다. 와우!!

“2021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청소년 사목위원회에서 발표한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이하 지침서)는 청소년을 복음화의 주체로 바라보면서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의 복음화 토착화를 위하여 청소년이 청소년과 세상 복음화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한다.“

 

6. 교회에서 청소년은 현재세대로서의 주체인가? 미래 또는 다음세대인가? 주체로서 권한은 부여되는가? 제발 다음이라는 말, 미래라는 말 좀 그만 좀 하자.

 

7. 청소년은 교리교육의 대상인가? 주체로서 사도직을 가진 존재인가?

 

8. 복음적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교회 안과 밖에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관계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9. 교회에서 청소년을 위해 열심히 하는데 청소년은 왜 감소할까?

 

10. 하느님을 믿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 믿는 청소년들과 신앙이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그곳은 과연 교회인가? 우리는 청소년이 세상에서 교회의 삶을 살도록 동반하는가?

 

11. 그리스도는 ‘With’를 넘어 ‘By’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12. 우리는 다른 이를 향한 삶을 사는 청소년이 되도록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교회에 청소년이 감소한다 수준이 아니다. 없다. 실제 참여하는 공간에 쉽지 않은 환경이다. 계속해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하고 있고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지만 개신교회 전체적인 특별한 대안이나 실행이 없는게 현실이다. 그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신학적, 역사적 기준을 중심으로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이 필요한 때다.

 

또 다른 내 안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교회에 앉아 있는 청소년수가 복음화의 결과인가?

교회에서 교리교육(가톨릭), 성경공부(개신교)하는 대상이라는 수가 늘어나면 청소년복음이 도는 것인가?

교회 안과 밖, 지역사회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안되는가?

 

할 말은 많아지지만 그만 써야겠다.

 

핵심은 담당 신부님, 목사님, 청소년사역자의 전문성과 열정, 헌신이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리교육 교사, 교회학교 교사의 수준이 어떠한지, 일주 일에 한번 한 시간여 만나면 신앙을 중심으로 사회에서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나는 종교를 넘어서 지역에 누구든지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우리 이웃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면 좋겠다는 것.

 

포럼 자료집 다운_아래

(0429)청소년사목학술심포지엄자료집_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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