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하나 쓰는데 20여 분 들였다. 보통 포스팅할 때 조금 긴 글 쓰는 시간이 2~30분 내외니 비슷한 시간으로 나름 정성스레 쓴 글이지만 모두 지우고 말았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매우 보수적인 원로께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 견해에 대한 댓글이었다.
오염수 좋다면서 과학이라는 여당의 주장만 그대로 안내하고 있었다. 반대 측 과학자들 글도 찾아보라고 정중히 설명하는 글이었지만 지웠다. 이분이 쓴 몇 가지 글을 훑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어르신이 절대 내 뜻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잼버리와 관련해서는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까지 하고 있었다. 읽어 내리기가 힘들다.
꽤 긴 시간 페친이었다. 나와는 다른 보수적 관점을 가진 분이었지만 경제인으로서 은퇴 후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는 분이다. 어떤 사안으로는 토론도 가능한 분이었는데 지난해부터 글이 윤 대령의 모든 정책에 대한 지지를 하면서 반대 측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가득한 글로 넘쳐났다.
이분이 나 같이 모자란 놈의 이야기를 듣지도 이해하지도, 오염수 방류 반대 측 전문가나 과학자의 주장이나 기사를 절대 열어 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왜냐고? 이쪽저쪽 진영의 극렬한 지지자들은 언제나 그랬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들 혐오하거나 적대시하기 바쁘다. 오래전 나도 그랬다. 내가 타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었다. 지금 무슨 궤변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너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반대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나름 이쪽저쪽 언론, 과학자 모두 찾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여야, 진보, 보수 찬반을 모두 접고라도 최소한 일본 핵 오염수 방류가 우리를 넘어 인류에게 좋다는 것 한 가지만이라도 있으면 찬성할 수도 있겠다. 일본이 치러야 할 핵 오염수 처리에 대한 천문학적인 돈을 절약하는 것 빼고는 우리에게 도움 되는 그 어떤 일도 찾기 어려웠다. 불과 2년 전에 현재 여당이 얼마나 극렬하게 반대했고 그 과학적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언론 찾아보기를 권면한다.
좌우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 자신의 진영이 아니면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사람들의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를 혐오와 분노, 극단의 분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간 지대에서 함께 소통하는 과정도 모두 배격한 채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조건 윽박지르고 혐오하면서 적으로 만들기 바쁘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이념도 과학도 그 어떤 것도 완전하고 완벽한 것은 없다. 과학도 이념도 그 어떤 가치나 철학, 정치도 계속해서 소통하고 관계하며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해 보인다. 서로를 적으로 돌려서 남는 것은 싸움밖에 없고 남는 것은 공멸뿐이다.
최근 일주일여 동안 재미있게 본 <마스크 걸>.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이 때에 춤을 춘 ‘모미’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사회자에게 “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요”라고 답하는데 울컥했다. 외모 때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그 주변에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 가는 끔찍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보여서 슬펐다. 마지막 ‘모미’의 딸 ‘미모’는 다시 삶을 살아 낼 힘을 얻는데 바로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안다는 것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과정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고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관계를 꿈꾼다.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은 그런 존재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면 먼저는 두려움이 몰려오고 이후 적대시하는 감정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할 뿐이다.
벌써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영국 거쳐 북아일랜드 갔을 때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숙박했었다.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왔다. 18세기 아일랜드 북부에 영국 개신교인들이 이주하면서 토착민인 가톨릭교도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식민 지배와 독립 요구에서 비롯된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이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라는 형태를 갖추게 된 것. 이후 신·구교의 싸움으로 번지면서 많은 사상자를 내며 극심한 갈등이 나타난다.
이 상황에서 1965년 데이비 목사는 개신교 및 가톨릭교 대학생 25명과 함께 조그만 호텔에서 함께 지내며 평화 활동을 시작한다. 호텔 이름이 코리밀라였던 것. 이후 공동체가 형성되고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찾아오는 커다란 공동체가 된다.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년들을 모으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신·구교 청소년, 다른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등과 캠핑을 하면서 청소년활동을 진행하면서 서로가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갔다.
함께 문제 해결하는 과정에서 협력을 배웠고,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서로가 누구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이후 정치인과 무장단체 사람들도 모아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냈다. 답은 하나였다. 서로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러한 중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공간이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생명이라면 존재 자체로 귀하게 여기면서 공생할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공간. 이념, 신념,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공간에서만큼은 사람으로서 만나고 서로의 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꿈꾸어 왔고 이루고자 살아간다.
온라인, 오프라인 그 어디서건 현재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분열되면서 영호남, 남북, 남녀, 장애인 비장애인, 세대 등 수많은 영역과 진영으로 나뉘어 적대시한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노력, 알 수 있는 활동과 사업이 필요해 보인다. 진영이라는 편을 만들어 싸우려고 하기보다는 가능한 상대를 존중하고 무엇 때문에 그런지 듣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한 때 같다.
토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까지 달그락은 청소년들로 인해 계속해서 달그락거렸다. 이 작은 공간에서라도 청소년, 청년을 중심으로 정치적 신념과 이념, 세대, 장애, 젠더 등의 문제를 넘어서 서로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함께 살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을 꿈꾼다.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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