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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마을과 관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성숙한 관계

by 달그락달그락 2023. 8. 8.

아기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기적이다. 자신만 안다. 배고프면 울고, 대소변 하면 울고, 배부르고 안정적이고 따뜻하면 웃는다.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해도 그 아이의 입장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생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유아기에 건강하게 자라는 것 이외에 책임이 없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어린이가 되었다. “아이에게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라고 부모에게 물었다. 부모는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아이는 자라서 27살의 건강한 청년이 되었다. 너무나 건강한 청년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도 불편해한다. 자신을 무조건 사랑해 주는 부모와의 관계만 있을 뿐이다.

 

몸이 건강한 청년이 되었으니 부모의 뜻이 이루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청년은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시민이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이 있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너만 편하면 돼”, “선을 넘어오면 가차 없이 잘라야 해. 절대 네가 정한 선을 넘어오게 하면 안 돼. 무례한 거지”, “인간관계 힘들면 삭제하면 그만인 거야. 왜 힘들게 어려운 사람을 만나?”, “혼자서도 잘 놀아.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최근 몇 년간 이런 이야기 많이도 들어왔다. 관련한 책도 많이 팔렸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다. 갈등하고 문제 있는 사람 중 끊어내야 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모두를 끊어내고 내가 정한 선을 절대 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사람은 내가 원하는 반응만을 보여 줄 수 없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과 다르면 화를 내거나 상대를 미워하기도 하는데 이는 욕심일 수도 있다. 나와 완전히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일이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회사와 같이 조직적으로 얽힌 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더욱 어렵다.

 

이 때문에 타자가 자신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때 내가 보여야 할 태도가 중요해진다. 이를 성숙의 수준으로 가늠하기도 한다.

 

아기 때처럼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다. 주변에 부모와 같은 존재 또는 역설적으로 하인 역할을 하는 사람만이 관계할 수 있다. 내가 아기가 아니라면 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존중할 힘이 있어야 한다. 반응의 순간에 보이는 태도가 사람의 성숙을 결정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사람은 혼자 살기 어려운 존재다. 나이 먹을수록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행복하다는 연구는 이미 너무 나와서 설명하는 게 식상할 정도다. 어떠한 특수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가능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임으로 정한 인간관계의 또한 점검해 볼 일이다.

 

어떤 아이는 무슨 장난을 걸어도 모두 수용하면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머리를 살짝이라도 만지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돌변했다. 물어보니 자기 머리를 만지는 것은 아주 무시하는 행동으로 알고 있었다. 무엇이 그런 기준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거나 건들면 한순간에 폭발할 정도가 되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우리네 인간관계도 비슷해 보인다. 관계의 선을 긋고 이를 넘어오면 바로 끊어 내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인간관계 맺기를 극도로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은 중학교 친구 세 명과만 지금도 친하다는 30대 후반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고개가 갸우뚱했다.

 

50대 후반의 어떤 아저씨는 자기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피상적이고 진짜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있다면서 한 달에 한두 번 가까운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공 차는 게 낙이라고 했다. 중고교 친구들과 친할 수도 있고 오랜 시간 우정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만나는 회사의 동료나 이웃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동료이고 이웃일 터, 이들과는 청소년기 맺었던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오로지 10대에 만났던 몇 명과의 우정만이 진실이라는 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 삶은 짧다. 80년 내외에 만나는 이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온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꾸준히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 나와 다른 점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은 태도에 기인한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대답인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