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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마을과 관계

인간 관계, 진심을 넘어 아름다워야...

by 달그락달그락 2023. 6. 7.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때 상대가 좋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번 썰(?) 풀었던 것 같은데 이전에 나는 나를 아는 주변에 모든 이들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말투나 태도, 말의 내용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긴 시간 동안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상대에게 진심이니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이들조차도 나를 싫어하기보다 그저 그런 수준에서 관계하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완전 자뻑(?) 이상 가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났으니 시간이 많이 갔다. 당시 일했던 기관 사직하는 과정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한 후배였고 동료였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배신감이 생겼다.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 상황을 겪은 이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방법이 상대가 나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을 상대가 모두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착각이었다. 상대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대부분 사람은 존중해 준다. 하지만 그 진심이 태도나 어떠한 말투나 여러 상황에서 오는 일들로 타자를 힘들게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이었다고 해도 상대에게 그 진심이 만들어 내 일이 힘겨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예를 들면 후배를 돕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당사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믿는 선배가 있다. 열심히 교육하며 사업에 매번 깊이 피드백하면서 설명하고 공부하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최선을 다해서 안내하고 지원했던 활동이 많으니 돕는 선배도 피곤하겠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후배 입장에서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선배가 자신에게 전하려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일이지, 그렇지 않을 때는 자칫 좋은 일은커녕 후배의 저항이 따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과정은 모두가 상대적이다. 나만 진심이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전달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당사자가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일까지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 오해도 없고 실수도 없다. 후배가 잘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면 그 이유와 과정을 알 수 있는 관계 형성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러한 관계 형성을 넘어서 함께 하면서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관계에서 이해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관계 형성에 꼭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까?,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라는 것?

 

청소년, 청년을 오래 만나왔다. 언제인가 어떤 청년이 찾아왔다. 청소년기에 나와 잠시 활동했던 청년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나에게 너무 크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의 활동하면서 내가 전한 몇 마디 말 때문에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갑자기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많은 청소년 중의 한 명으로 습관적으로 매번 설명하고 안내하는 이야기 중 하나였지, 당시 이 친구만을 위해서 특별히 관심을 두었던 일도, 무엇을 의도적으로 고심하며 도움을 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행한 것에 비해 너무 과한 감사를 표하는 청년에게 괜히 미안함까지 생겼다.

 

반대로 잠을 줄여서까지 집중하며 쏟아부었던 청소년들이 있다. 이후에도 관계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 나누고 종종 연락도 하고 명절이면 꼭 안부 인사와 함께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반면 감사는커녕 떠난 이후 아무런 소식도 없고 어쩌다가 만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인연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런 경우 서운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닌데 당시에 그()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운함이나 누구에게 감사함을 받는 느낌도 조심스레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서로에게 부담만 갈 뿐 상대가 전하는 어떤 기억과 추억에 따른 감정이나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소명으로 믿고 있는 일을 꾸준히 최선을 다해서 행할 뿐이고 타자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면서 받아들이고 관계하는지는 온전히 타자의 몫일 뿐이다. 그저 나는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할 뿐이다.

 

상대에게 내가 행하고 관계하는 일에 의미나 가치는 알려야 하지만 이 부분 또한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내 안의 진심이 상대를 통한 어떠한 이기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위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고, 나름의 가치와 비전이 있는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행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이다.

 

아름답다라는 이 말, 사람이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

 

페북에서 짧은 동영상 지나가는데 “15세기 석보상절(조선시대 편찬될 불경 관련 책)이라는 책에서 아름와 같은 말이었다. , “아름답다나답다라는 말이었다. 그렇지. 답은 여기에 있었다.

 

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다울 때다. 상대와 관계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살면서 타자와 내가 잘 어우러진다는 것은 내가 나다울 때, 타자 또한 타자 다울 때이고 그 관계에서 다양함을 존중할 때다.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나답게 살아가면서 소명이라고 믿고 있는 일, 상대와 나, 우리를 위한 일을 행해 가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뿐이다.

 

타자가 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가 쏟아부은 사랑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낙심하거나 힘겨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다움에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의 향기를 내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힘은 아닌지?

 

내 가슴을 더 크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뿐, 결론은 가슴을 더 키워야겠다는 것.

 

병원에 가야 하나? 아 이런...ㅠㅜ 마지막 말은 개그였는데.. 항상 개그 욕심이 쪼금 과함...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