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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꼰대와 나

by 달그락달그락 2023. 1. 31.

쇼츠나 릴스 보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 어제 한마디 했다.

 

너가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해도 좋은데 조금 의미 있는 것을 하면 어떠니?”, 그러자 아빠, 뭘 할 때 모두 의미가 있어야 해?”라며 되묻는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래도 많은 시간 동안 휴대폰 보는데 의미 없이 하는 것은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러지. 차라리 영화나 다큐를 보면 어떠니? 웹소설이나 만화도 좋다. 너 좋아하는 빵 만드는 유튜브 보면서 빵 연구를 해도 좋고

 

아이가 알았떠.”라고 대답. 반응이 떨떠름해 보였다.

 

6, 7년 전 두 아이

 

국민학생 때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부터, 문구점이나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만화 캐릭터 그려져 있는 딱지를 친구들과 게임 해서 열심히 모으는 게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잃을 때도 많지만 딸 때도 있었다. 그때 기분이 좋았다. 어느 순간 딱지를 몽땅 땄다. 그 순간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오락실 알게 되어서 열심히도 다녔다. 게임기 앞에 앉아서 50원 넣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하게 됐다. 친구들이 뒤에 서서 구경할 정도가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오락실 들렀고 방과 후 들렀다. 초등 저학년 때 열심히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무슨 의미일까? 허무함, 의미 없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딱지치기와 오락실 게임과 같은 일은 방법과 내용만 달라졌을 뿐 나이 먹어서도 계속 반복됐다. 무언가 하고 싶어서 재미나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무해지고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들이 반복된다.

 

꼰대는 '늙은이' 또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쓰여 있다. 초기에는 이런 의미가 강했으나 요즘은 나이를 넘어선 용어가 됐다. 10, 20대 꼰대도 넘치는 세상이다. 꼰대는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무엇을 상대에게 강압하거나 주장하는 이들을 일컫는 의미가 되어 가는 것만 같다.

 

내가 꼰대인지 돌아보는 때가 많아진다. 몇 년 전까지 꼰대 짓을 많이도 한 것은 아닌지? 강의실, 회의실이 내 주 무대였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사나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복지사 등 청소년과 관계된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 대상으로 많이도 썰(?)을 풀고 다녔다. 내 경험이나 지식이 모두인 것처럼 주장한 일들 있었다.

 

그때에는 얼마나 자신감이 넘쳤는지 모른다. 내 삶의 현장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이들을 위해서 가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퍼내야겠다는 진정성도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삶의 현장은 지구 안에 나만이 아는 먼지 속 같은 아주 작은 곳이라는 것을.

 

인간사 완전한 기준이 존재하지도 않고 완벽한 대안도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인간관계 안에서 녹아져 나오는 그 어떤 삶의 맥락에 기인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도 안다.

 

운명, 인연 등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어떤 힘에 의해서 사람의 삶이 결정되기도 한다. 아니... ‘노력보다는 이 더 크게 우리 삶을 좌우한다는 말이 맞을 거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왜 한국이어야 하고, 우리 아빠,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어야 하는지도 인연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전쟁에 힘겨워해야 하고, 누군가는 빌 게이츠 딸로 태어났는지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막내에게 전하는 내 이야기가 먹힐지 알 수도 있다. 내가 전하는 말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릴스 보다가 상상력이 향상되고 창의력이 넘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허무함을 알게 되고 자신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지 누가 알까?

 

그래도 나는 막내가 스마트폰 가지고 릴스를 너무 많이 보면 종종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아빠로서 책임져야 할 일이어서다.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웹툰, 웹소설, 게임, 인스타, 유튜브 등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또 한 면에 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있다. 문제는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인데, 조절 능력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하는 이러한 유의 일들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을 거다.

 

돌아보니 수십 년 전에 열심을 냈던 딱지와 오락실, 만화가게 등이 마냥 허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 먹어서 술을 먹고 후회하는 등 비슷한 여러 일들 또한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마저도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었고 배움도 있었다.

 

삶의 순간에 자신이 무엇에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가는지 깨어서 들여다볼 일이다. 최소한 내가 지금 무언가 행하는 이 순간에 집중하는 어떤 일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면 일단은 성공이다.

 

꼰대 짓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강연이나 면담, 상담 회의 그 어떤 자리에서도 먼지만큼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일일지라도 그 순간에 진정성 다해 그 어떤 본질을 알고 가슴으로 만난 일을 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강압하거나 주장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자기 삶의 현장에 가장 치열하고 깊은 삶의 가치를 전해야 할 필요는 있다. 어쩌면 같은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로 보인다. 그 순간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타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해석 또한 그렇다.

 

어떠한 주장이나 설명에 그 중심의 진실이 있다면 이미 꼰대는 아닌 게 된다. , 받아들이는 사람이 꼰대면 그 사람도 꼰대겠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고 이후 그가 복이 될 수 있도록 제안이나 가치를 설명하려는 노력. 쉽지 않지만 집중해야 할 일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꼰대 또한 타자에게 배움이 크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하지.

 

갑자기 막내에게 배움이 컸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