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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뛰어난 길 잃은 한 마리 양

by 달그락달그락 2022. 12. 10.

 그 한 마리 양이 아흔아홉 마리보다 뛰어날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하나?”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 탁월한 놈이지.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

 

허공에 날아든 단도처럼... ‘존재했어?’라는 스승의 말(질문)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 김지수 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p.167 에서

 

주인이 아흔아홉 마리 양을 내버려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떠난 비유? 여러 해석이 난무하지만 부족하고 불쌍한 사람을 비유하거나 주인의 사랑을 부각하는 게 통설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100마리 양 중 유일하게 길 잃은 양이 존재하는 녀석이었다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해.

 

내가 나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삶은 길 잃은 양처럼 떠나야 한다.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안정적이라고 주장하는 삶은 거부하고 싶어.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그 누군가 뒤를 쫓아 가면 된다고 강압하며 교육하는 것만 같다. 안정성이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무조건 정해진 어떤 틀을 가지고 청소년을 양 떼 몰 듯이 몰아가며 존재를 상실케 하는 상황은 아닌지.

 

누군가는 그들의 가장 앞에서 온전히 자기 생각으로 자신이 선택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뒤를 생각 없이 쫓아가는 게 맞는가 싶어.

 

공부하고 경험하면서 책과 종교 등에서 목자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 하지만 결국은 당사자가 그 목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이건 종교와는 다른 이야기이니 성내지 마시길) 자기 삶에 참여하며 존재하는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거잖아.

 

그제 사무실 동료와 초저녁 뒷동산 산책 중. 전라도와 충청도가 함께 보이는 곳.

 

자신이 자신을 존재케 하는 그러한 삶. 가슴 안에 품고 있는 그 어떤 이상과 가치, 철학을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공부하며 만나는 세상의 부딪침 안에서 성찰하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삶은 누군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관광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모험이라는 거지.

 

누군가에게 당신이 꿈꾸는 것이 무엇이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아. 나 또한 비슷하게 살았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해서 선택하고 움직이는 거다. 여기에서 는 생각인 거야. 생각하면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으니 대부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그저 누군가 안내하고 있는 것 안에서 따라가기에도 벅차다고 하지.

 

그래서 더욱더 생각해야 해. 누군가를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 아냐. 목자라고 여기는 누구인가를 따라가는 삶도 자신이 생각하고 선택하는 거야. 생각 없이 고개 푹 숙이고 따라가는 삶은 자신의 존재를 죽이는 거라고.

 

따라가도 따라가지 않고 길 잃은 양으로 삶을 살아도 그 모든 선택은 자신이 하고, 그 선택 이면에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근본이라는 것. 이것만은 기억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