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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자녀가 원하는 대학의 이유를 알까?

by 달그락달그락 2022. 9. 13.

친척 중 한 분이 아이가 고3인데 수시 원서 쓰면서 자신과 갈등한다고 했다. 명절 맞아 친척들 몇 분 만나면서 10대 자녀의 진로와 함께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들이 있었다. 연구와 청소년 현장 경험에 따라 설명해 드리려고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려는 분도 계셨다.

 

우리 아이가 마케팅 분야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요. 그 과 졸업해서 월급도 얼마 안 되고, 불안정해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아는 분 딸 아이가 서울에 대학에서 관련 학과 졸업해서 취업이 안 돼서 지방에 작은 업체에서도 인턴으로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공부를 왜 해야 할까요?” 등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설명하기 바빴다.

 

혹시 마케팅이나 광고에 관한 책이나 직업 관련 정보를 읽거나 찾아보았느냐 물었다. 관련 전문가 만나서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누어 본 적 있느냐고도 물었다. 전혀 없었다. 나에게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광고 분야에 대해 쏟아낸 이야기는 누군가에게서 듣고 이해한 이야기의 종합이었고 가까운 지인이라고 일컫는 하나의 사례였다. 그 사례도 인턴으로 일하는 청년을 직접 만나서 들은 게 아니고 부모의 지인이 전한 이야기를 해석하고 있었다.

 

 

이런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 어디에 근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이나 신념을 주장하기 바쁘다. 오랜 시간 많은 부모를 만나 오면서 자녀에 대한 진학과 직업에 대한 진로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이 그랬다. 어디에서 근거했는지도 모르는 정보에 의해 생겨버린 자기 주관을 통해서 자녀를 강압하려고 했다.

 

그래서인가?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 교육을 망친 사람은 옆집 아줌마(아저씨)라나? 자녀 교육이나 입시, 진로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옆집 자기(?). 희한한 것은 옆집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어떤 직종이 좋은지, 아파트 단지 내에 어떤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갔는지까지 안다. 내 보기에 질문하는 분이나 받는 분이나 수준은 거의 비슷한데 옆집 자기 말은 거의 하나님 이야기로 믿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청소년 진로와 관련한 일을 해 온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아이의 진로를 위해서 거의 목숨 걸다시피 돈 벌어 학원비를 포함한 학비를 쏟아붓고 매번 하는 이야기가 너 잘되라고 이렇게 고생한다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상한 근거를 들이밀면서 서로를 힘들게 한다.

 

자녀 진학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모도 있다. 자녀가 원하는 데로 내 버려두는 게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녀가 어떻게 학과를 정하고 무엇 때문에 대학을 가려는지 모른다. 자녀의 의견을 100% 지지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 선택이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이는 방임일 수 있다.

 

엄마, 나 어떤 학과 가야해? 학교는?” 심지어 자녀도 엄마에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를 명령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살았지, 의견을 듣고 존중하며 선택권을 부여해 본 경험이 없다. 당연히 부모에 물어야 하고 부모의 식견이 어느 수준인지 모르지만 안내한 몇 마디가 자녀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매번 부모가 강조하는 일은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정적으로 잘 먹고 잘사는 직업일까를 고민하는 것만 같다. 그런 직업은 이 세상에 없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직장에 나가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반복되는 그 직장에 나가면서 힘들지만 의미가 있고, 어렵지만 나름의 가치와 보람이 있는 일, 그 일이 단순히 돈 버는 일을 넘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만난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여기에도 공통점은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로를 선택하는 그 모든 기반은 내 보기에 자녀 당사자의 선택에 기인해야 한다. 선택하는 이유를 물어야 하고, 그 이유가 일이나 공부의 근본 가치에 올바르게 맞닿아 있다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면 된다. 문제는 선택의 근본적인 이유를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는 거다.

 

당사자 자신 또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이 즐거운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성인으로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 자신과 관계없는 삶의 물줄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흘러가는 인생이 되고 만다. 생각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며 선택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묻고 또 묻고 성찰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자기 삶의 배에 엔진은 반드시 자신이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태풍이 오더라도 엔진이 살아 있고 선장이 유능하면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라도 엔진이 꺼져 있으면 작은 파도에도 선박은 침몰한다고 했다. 자녀, 청소년의 삶이라는 배는 부모가 평생 끌고 갈 수도 없고 대신 엔진을 돌려줄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자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가 사회라는 망망 바다에서 엔진을 끄지 않고 돌리면서 모험을 떠나 멋지게 항해할 수 있는 그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바다는 매일 안정적이지 않다. 어떨 때는 너울이, 또 어떨 때는 태풍과 비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평안하게 햇살이 비추기도 한다. 누구나가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 함께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엔진을 돌리는 힘은 개인의 선택 즉, 삶의 참여에서 나온다. 자녀가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반드시 그 이유를 듣고 대화하는 과정을 꾸준히 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