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수능을 보는 청소년과 수능을 거부한 청소년에게... 마음이 애려.

by 달그락달그락 2022. 11. 17.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대입 시험 보는 학교에 갔다. 시험 자리 확인하고 귀가했다. 너무 피곤해서 오후에 잠시 낮잠을 잤다. 생전 자지 않던 낮잠이었는데 그날은 그랬다. 저녁밥을 어떻게 먹고 나서 조금 이르게 누웠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거다.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거의 뜬 눈으로 날 새고 시험을 치렀다. 시험지 노려보다가 중간에 졸았고 심지어 고사장 감독하는 선생님이 깨워 주기까지 했다. 당연히 낙방했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그때 운 좋게 합격했으면 지금 나는 뭐가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 아찔해. 왜냐고? 현재의 나는 내 모습이 너무 좋아서다. 웃기는 소리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멋지게 보겠지만, 누군가는 너무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고, 누구에게는 고생하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거든.

 

나는 내가 현재 하는 청소년활동이 좋다. 고교 동창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면서도 이전과 다르게 내 삶에 당당해졌다. 심지어 그들 중 내 일을 부러워하는 녀석도 있더군. 자기는 내부 경쟁에서 미칠 것 같고 이 나이에 곧 기업에서 나와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해.

 

그런데 말이다. 내 알기로 우리 삶의 모든 일은 힘들더라.

 

내일이 수능이다. 많은 사람이 수능 보는 청소년을 위해서 응원해 준다. 교회, 성당, 절 등 종교기관에서도 수능을 위한 이벤트는 빠지지 않고 나온다. 모든 곳에서 기도하고 염원하고 있다.

 

소수지만 한 편에서는 수능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교원단체 중 한 곳은 교사를 감독관으로 데려가는 것에 반대하면서 수능 폐지를 주장하더군. 또 한 곳에서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학에 안 가거나 자발적으로 저항하는 청소년을 응원해야 한다고 하지. 수능 시험 한 번에 인생의 한 축이 바뀌는 것은 누구나 그렇듯이 문제로 보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수능이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 청소년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는 덜 신경을 쓰고 맹목적 경쟁만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저녁에 달그락에서 청소년들 만났다. 내일 쉰다면서 환하게 웃는 청소년 모습 보면서도 괜스레 모든 이들이 수능을 목적으로 향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전화를 많이 주고받았다. 목이 아플 정도다. 거기에 회의도 몇(?) 시간 했다. 잠을 조금 자서 피곤해. 그래서인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오늘은 접었다. 퇴근하면서 편의점 들러 컵라면 들고 와서 소주를 땄어. 오늘은 그런 날이다.

 

화요라는 술인데 작기도 하고 마시기도 편하다. 한 병을 홀짝였다. 그러게. 이 글은 음주 글이다. 내일 아침 후회하지 않을까? 몰라. 간만에 이 작은 소주 한잔에 마음이 편안해져.

 

수능 보는 친구들, 수능을 저항하는 친구들도 안쓰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삶이 만들어져 가더라.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혹여나 수능을 망쳐도(나처럼 심각하게 망쳐도) 삶은 그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꼭 말해 주고 싶다. 서연고 졸업해도 많은 친구들이 취업 못 해 허덕이는 것도 비슷하지.

 

삶에서 자신이 잘 살 수 있는 그 어떤 가치나 이상 뜻을 붙잡지 않을 때 삶이 참으로 이상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발이지 시험 못 봤다고 너무 큰 상처 받지 말기를. 시험에 저항하거나 비판적인 친구들은 또 하나의 자기 삶을 잘 개척해 나가기를.

 

알딸딸한 시간이다. 내일 아침 이 글 보면서 후회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