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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여교사 촬영하는 중학생, 본질 없이 형식만 남은 교육과 강압의 콜라보!

by 달그락달그락 2022. 8. 29.

충남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남학생이 교단에 누운 채 수업 중인 교사를 촬영 중(왼쪽), 한 남학생이 상의를 탈의한 채 수업을 듣는 모습, 사진출어. 유튜브 캡쳐

 

틱톡에 중학교에 한 남학생이 교단에 올라가 누운 채로 수업 중인 여교사 뒷모습을 아래에서 위로 촬영하는 듯한 12초짜리 영상이 올라왔다. 교사는 이를 무시한 채 수업을 이어 나갔다. 남학생의 행동을 본 같은 반 학생들은 ", XXX네 저거", "OO, 이게 맞는 행동이야?" 등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누구도 이 학생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 동영상 보고 충격받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댓글 살피면 저런 놈은 두들겨 패야 한다.”, “체벌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등 학생을 비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수업에 스마트폰 압수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안 정도로 나온다.

 

미국의 정책을 대안으로 꺼내는 이들도 많다. 스쿨폴리스제로 실제 경찰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교사의 말을 안 듣고 저항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때 경찰이 나서서 제지하는 제도다. 동영상을 살피니 거의 범죄자 잡듯이 포박하는 영상도 많았다.

 

학교폭력과 관련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위스콘신주 등 몇 곳에서는 학생이 가해자면 부모가 법적 책임을 지는 조례를 통과시켜 운영 중이다. 오늘 나온 대안 중에 학교에서 문제 일으키는 학생에 대한 처벌을 부모와 연대해서 지게 해야 한다는 말도 많았다.

 

이전에 처벌이 심했을 때는 좋았을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교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교탁이었다. 모든 교실의 교탁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었고 심지어 매직으로 털 모양을 그려 놓은 것도 있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그때는 그랬다.

 

체벌도 심했다. 수업 시간에 조금이라도 떠들면 바로 몽둥이가 날아왔고, 따귀는 기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조용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 중 조용한 말로 수업하면서 절대 학생들에게 손을 대지 않는 분도 계셨는데 그 시간만큼은 항상 소란스러웠다. 동영상의 모습까지는 아니었지만 심하게 장난치는 학생은 그때도 있었다.

 

강압 당하는 것을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세월이었다.

 

반장은 무조건 교사가 시키는 것을 하는 하급 병사와 같은 존재였다. 담임교사가 떠든 사람 이름 적어 오라면 몰래 이름 적어 내야 했고, 선생님을 대리해서 무슨 일본 순사 역할 하듯이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였다. 반의 학생대표가 아니었다. 학생회장도 비슷해 보였다. 학생의 의견을 중심으로 담임과 학교장에게 건의하고 토론하며 제안하는 일은 언감생심인 세월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학생인권조례도 만들어지면서 체벌도 거의 없어졌다. 이전과 전혀 다른 교실 분위기다.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지금은 때리지는 않지만, 강압적이거나 무섭다고 표현되는 교사의 수업은 학생들이 조심스러워하지만 그렇지 않은 젊은 여교사나 편안함을 주는 교사들의 이야기는 그리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페친이신 모(?) 교장 선생님께서는 오늘 영상이 일반인들에게는 충격적이겠으나, 요즘 선생님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상황일 수 있다면서, 간혹 교실에 들어가 특강을 할 때도 교장인 자신도 겪는 일이라고 고백하며 피곤하다고 교실 뒤에 드러눕거나 친구랑 떠들어대는 학생들에 대해 글을 쓰셨다.

 

심지어 외부기관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강사는 어떨까? 거의 그림자 취급한다는 말이 맞다. 창체 등 여러 교육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간 외부 강사들에게는 아예 눈을 주지도 않고 누워 자는 아이들은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학생에게 외부 강사의 수업은 교육이 아닌 자율활동 시간과 같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중학교 수업 분위기에 힘겨워하는 현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기가 막힌 일이 한둘이 아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몇 년 전이다. 전교생 대상으로 진로와 관련한 강의를 했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오셔서 큰 소리로 머리 숙여!”라는 소리를 하고 겨우 조용해진 상황에서 연단에 올라야 했다.

 

바로 이거다. “머리 숙여누군가 강압해야만 그때에서 겨우 꾸역꾸역 말을 듣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그리고 강연을 700여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모두 집중해서 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1년에 한두 번 오는 외부에 어떤 전문가라는 아저씨가 나타난 행사에 학생들은 자신이 동원당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도 집중해서 강연 듣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이전과 변하지 않은 것은? 본질 없는 형식만 있는 교육과 또 다른 강압에 길들여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다.

 

사람은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가 모두 배워야 할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배려와 사랑, 신뢰 등의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가르치지도 않고 문화로도 되어 있지 않다.

 

무슨 말이냐고? 학교는 이미 입시의 전쟁터이고 그것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문화 자체가 그렇다. 교육이 진짜가 아닌 가짜가 너무 많다는 거다.

 

시를 읽고 감동하며 눈물짓지 않는다.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서 일제 강점기의 울분을 토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고 가슴 따뜻한 그 어떤 영감을 받지 않는다. 영어로 대화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이 모든 것은 문제를 풀어내는 도구인 것이고 대학만 가면 그만이다. 모두가 가짜이고 형식이라는 말이다.

 

교육의 진짜는 삶으로서 나타나야 하는데 우리가 지금 만들어 내는 모든 교육은 형식에 초 집중한다.

 

교육의 본질? 교육기본법의 이념에 너무도 잘 쓰여 있다. 인간다운 삶, 민주시민, 인격도야, 인류공영의 발전 등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귀한 가치가 녹아 있지만 귀가하면 아이들에게 인격도야에 대해서도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도 전혀 논하지 않는다. 그저 성적만 남는다. 모든 게 형식이고 겉치레일 뿐이다. 폭력적인 환경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시민성을 더욱더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 공간에서 잘못된 것을 바꾸어 낼 힘이 있는 시민이다. 내 공간에 참여해야 한다. 권한 부여하며 참여해서 실제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학생을 형식적인 교육대상으로 치부할 게 아닌 명확히 학교 주체로서 학생을 세워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함께 지는 환경 조성이다.

 

더불어 교실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응당 그에 합당한 대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봉사 시간 몇 시간을 진행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수준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명확하게 그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경제적(미국은 가해 학생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이고 실질적인 대응과 상담과 함께 프로그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기 잘못에 대한 직면이 없을 때 문제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전이 좋았다고? 최악이었다. 그럼 현재는? 과거와 비교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학생은 일방적인 교육대상이거나 어른에게 저항하는 큰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주류다.

 

학교 교육을 형식에서 진실로, 본질로 들어가서 집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열정을 다해 학생을 만나는 지인 교사들이 많은데 내가 또 뻘(?)소리 하는 것은 아닌지... ㅠㅜ

 

이런 환경에서도 교사의 본분을 잊지 않고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 땀 흘리며 형식이 아닌 교육의 진실을 중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학생을 만나는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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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 글은 청소년인권운동하는 공현샘의 글입니다. 생각할 지점이 많아서 링크해요. 페북 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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