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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청소년 선교라고 했던 활동 이후...

by 달그락달그락 2022. 11. 20.

오래전 사진. 어떻게 찾았다. 회관에서 청소년들과 무박 캠프하고 잠 안 자고 새벽에 월명산에 수시탑 앞에서 촬영한 사진. 말이 좋아 캠프지 식사는 도와주던 동민 샘과 청소년들 함께 카레 만들었고, 집에서 쌀 가져와서 밥해서 먹었다.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데로 기획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늦은 밤에 옥상 올라가서 작은 불꽃 피우면서 속 이야기 나누고, 담력 테스트한다면서 피가 묻은 칼이 있다고 전설처럼 내려오던 건물 지하실 다녀오는 등의 웃기지도 않는 활동이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3, 40여 명 청소년들 데리고 월명산에 올라서 수시탑까지 걸어갔다.

 

한 아이가 기타를 칠 줄 알아서 찬양도 하고 주일 새벽에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던 때였다. 사진에 나오는 청소년 대부분은 교회도 안 다니고 신앙도 없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다.

 

내일 오후에 타 지역에 100년도 더 된 큰(?) 교회에 오후 예배에 강의하기로 했다. 청소년, 청년 주간으로 드리는 예배인데 전문가 이야기 듣고 싶다고 초청받았다. 달그락 브로셔와 후원카드도 챙겼다. 강의 준비하다가 오래전 나의 좌충우돌 청소년활동 하던 초기에 사진을 찾은 것. 그때 무슨 마음이 있었는지 직장 그만두고 그렇게 아이들 만나면서 와이에 들어가 민간 단체활동 열심히도 했다.

 

신앙 때문에 인생 걸고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교회 사역에 대한 내 안의 회의가 커졌다. 신학적 사유 비슷한 것을 하며 어쭙잖은 공부 하면서 깨닫는 게 많았다. 현장에서 청소년활동 하며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현재의 달그락과 같은 청소년 중심으로 지역에 많은 이웃이 함께하는 공동체적 활동을 기획하는 삶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신앙은 삶으로 체화되지 않으면 정말 빈껍데기만 남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누구도 존중하지 않고 다가오려 하지 않는 그들만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더라. 공동체라는 말을 하기도 버겁다. 그들 안에 신앙으로 모였다고 우기는 사람들조차 그들만의 의지에 관계없이 가스라이팅 당하듯 희한한 두려움과 세상 가운데 욕망이 범벅이 된 그들만의 신념 가운데에서 살게 되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교회에 청소년이 없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하고 있지만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그저 매번 젊은이들이 떠나고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세속화된 세상에 탓으로 돌리는데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세상 탓이 아니다. 중고교에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정도가 되어 버린 우리 개신교인들의 삶의 문제다. 본질은 거기에 있다.

 

나부터 삶으로 표현되지 않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모습들. 부끄럽고 처참할 때 많다.

 

내일 강연(?)은 이전에 내가 선교라고 믿고 진행했던 여러 일들 가운데에 왜 달그락과 같은 지역 중심의 자치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어 가게 되었는지가 초점이다. 달그락과 같은 작지만 강하고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청소년 공간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개척교회 하듯이 사람 수 연연하지 않고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집중하는 그런 따뜻하게 연결된 공동체와 네트워크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지 않아도 만나면 미소가 나오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 슬플 때 함께 슬퍼하며,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관계하는 공간이다. 정책적으로도 전문화 되어 사회를 구체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공간이다. 당사자인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교육, 상담 등의 대상이 아닌 그들도 삶의 주인으로 참여하고,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삶을 살아 내는 그러한 공간.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신뢰하는 관계의 공간이다. 내가 꿈꾸는 이 땅의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