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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마을과 관계

대화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어야

by 달그락달그락 2022. 9. 4.

여기 계신 분들(사진)은 가까운 분들과 매일 대화 하실까? #아버지 계신 곳

 

오늘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님 성묘 다녀왔다. 아버지 계신 묘소는 어릴 적 다녔던 모 교회의 묘지에 안장되어 계신다. 오래전 교회에서 땅을 사서 성도들 돌아가시면 안장하는 곳이다. 어머니는 이 교회 권사이고 삼촌은 장로다. 두 분 모두 교회에 어려운 일 도맡아 하시는데 특히 삼촌은 이곳 묘소도 지극 정성 돌본다. 어머니 이야기 들으니 앞에 감나무 등 나무와 잔디도 손수 구매해서 심고 다듬는다고 했다.

 

이전 추석 전에 성묘하러 갔을 때도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 정리하고 계셨다. 교회 일이라면 시간과 돈을 쏟아부으면서 남이 하지 않는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분이다. 나 만나면 항상 온화한 미소 지으며 우리 건희 수고한다라면서 반갑게 맞아 주는 분이다. 내가 하는 일을 좋은 일이라고만 알고 있다. 그리고 극우에 가까운 정치신념을 가지고 계신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이분 관점으로는 빨갱이고 황교안 같은 자가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믿고 있다. 정치신념은 나와는 완전 반대편에 서 계신다.

 

이전에 조카 결혼 때문에 서울 올라가면서 삼촌과 웃으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정치 이야기가 나왔는데 피하느라 애를 먹었다. 믿음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사자의 믿음은 수용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음을 안지 오래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바꾸어 낼 수 있다고 설레발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됐다.

 

사람이 사람과 대화 하면서 관계하는 것은 의견의 일치나 불일치를 가리는 데 목적을 두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어느 수준에 맞는 예의와 수용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타자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일 뿐이다. 이런 글 끄적이고 있지만, 이전에 상대는 나에게 무조건 변화의 대상이었다. 선동 잘한다는 이야기 들었고 어릴 적 꿈은 목사보다도 부흥사(?) 같은 거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여겼다.

 

삼촌이 어째서 문 대통령을 빨갱이로 알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그다음으로 해도 절대 늦지 않는다. 그저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니 그것을 소득으로 치면 된다. 관계의 핵심은 대화를 더 편안하게 나눌 수 있으며 인간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뿐더러 관계만 악화되고 만다.

 

요즘 우리 사회에 수많은 갈등 관계를 보면서 가끔 큰삼촌을 떠 올린다. 극소수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제외하고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나 또한 완전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저 내 수준에서 삶을 살아 내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다. 그런 부족한 내 가슴에 신념을 끊임없이 의심하려고 정말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과 가슴 열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준을 설정하고 대화하는 일은 상대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상대의 믿음을 흔들고 바꾸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그 일이 내 소명이라고 믿고 살았었다. 특히 어떤 의식화 된 이념이나 종교성은 더욱 그렇다.

 

오래전이다. 많은 청소년 만나면서 그중에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랑했고 정말 많이도 쏟아부으며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기를 원했던 청소년이 있었다. 나 같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청소년이었다. 몇 년간 깊게 활동하면서 많은 곳을 같이 다녔고 훈련이라고 생각되는 여러 교육도 공들여서 했었다. 어느 순간 이 친구가 이상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신문에 나오고 있는 주류 개신교에서 이단 삼단 하는 교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 들어왔고 그 종교를 통한 포섭의 대상이 나와 함께 내 주변에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활동하는 몇 년간 그 친구도 진심이었고 나도 진심이었다. 이 청소년이 대학 진학 후에 따로 만나서 나도 네가 원하는 그 교회(?)에 가 볼 터이니, 너도 우리 교회에서 몇 달간만 함께 해 보자는 등의 제안도 했고 어떻게든 무언가 나누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부질없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잘 못 되거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류 개신교에서 이단 삼단 하는 교파의 종교일 뿐 그 친구 삶은 정말 경건했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 이미 15년이 넘어서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하지만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친구였다.

 

사람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고 선의를 베풀고 나누는 존재여야 했다.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해 주는 그런 관계. 그러다 보면 좋은 게 무엇인지, 나쁜 게 무엇인지 서로 간 알아가는 삶의 과정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요즘 들어 세대 간, 지역 간, 성별, 나라 간 계속해서 분열되고 나뉘는 모습 보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이거다. 나와 우리가 타자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성찰이다. 매번 타자의 문제를 끌어내서 비판하고, 비난하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그 악순환을 끊는 일은 아마도 나와 우리 큰삼촌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가능은 할까?

 

#대화 #사람의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