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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마을과 관계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by 달그락달그락 2022. 3. 14.

군에 있을 때 행사 시범팀에 차출되어 훈련하다가 레펠에서 떨어졌다. 아직도 기억하는 전방레펠, 도약레펠 등의 줄 잡고 떨어지는 훈련이었는데 아래에서 줄을 낚아줘야 할 상관이 잠시 한눈을 팔았는지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병원에 한 달여 넘게 입원해 있었다. 군 병원에 가니 병원 짬밥이 따로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병장이 점호한 후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해서 너무 화가 나서 난리(?)를 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에서 그런 분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부대도 차출되었던 곳이었고 훈련도 힘들었던 때다.

 

왕고라며 신고식 중심에 있던 병장은 일병 때에 손가락 하나가 마비되어 입원하고 병장까지 단 병사였다. 자대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 있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이해하면서 편해졌다. 병원 생활 적응 중 병동 분위기가 갑자기 험악해졌다. 설악단이라는 부대에서 두 명이 크게 다쳐서 입원한 직후였다.

 

당시 HID라는 부대명을 들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 둘의 살기 어린 분위기에 압도되어 다른 환경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북한도 다녀오는 특수부대라는 소문만 나돌았다. 알지 못하니 그저 불안한 존재로만 남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강철부대 몇 편을 봤다. 작년에 후배가 프로그램 이야기하면서 박군의 리더십이 좋다고 일장 연설했던 기억이 났다. 707, 특전사, UDT 등 최정예 부대에 예비역들이 나와서 승부를 겨루는 예능이다. 체력을 크게 요구하는 경기가 많았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우를 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최근 시즌2가 시작되었고 거기에 HID가 출연했다.

 

내가 알고 있는 HID는 오래전 강원도 전방의 군인병원에서 만났던 무서운 존재로 아저씨영화에 나오는 원빈 수준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종편 예능까지 나올 수준이 아니었다. 일하다가 자료 검색 중 방송에 나온 HID 청년들이 제대하고 가업인 돈가스집에서 일하고 있고, 어릴 때 육상선수였다는 등의 신상이 공개되어 있었다. 갑자기 친근해졌다.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20, 30대 젊은 청년의 순수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잘 모르면 두렵다. 사람을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알지 못하니 두려워하고 두려움이 있으니 이를 이기기 위해서 상대를 배타하고 적으로 만들어 낸다. 대선이 끝났다. 곧 지방선거다. 우리는 대부분 그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상대방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악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배타하는 일을 너무 쉽게 한다.

 

자신의 신념과 믿음이 사실을 만났을 때 신념이 변해야 옳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신념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부정하면서 자기 믿음에 맞는 이야기를 쫓아가는 일이 많아 보인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과 믿음을 강화하는데, 이때 타자에 대한 적대감과 두려움은 더 커진다.

 

타자를 알고자 가슴을 열고 서로의 장단점을 토론할 수 있는 힘은 민주주의 시발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를 알고자 하려는 노력보다는 선거에 출마한 사람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적대 감정을 키우는 일이 많아 보인다. 남북문제는 어떤가? 나 어릴 적 북한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늑대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알지 못한 채 공포만 남았다. 남북이 평화로울 리가 없다.

 

무섭고 두려운 사람들은 결국 그가 누구인지 모를 때라는 것을 되새김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정치판의 한 부분에 놓여 있다. 나의 신념과 믿음을 사회에 투영할지라도 경쟁 상대가 적이 아닌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겠다. 또 다른 선거가 기다린다. 대선과 다른 지역의 선거. 우리 모두 이웃의 누군가가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